1부. 우연한 만남, 필연의 길
그가 자라던 시골 동네 먼 발치에
우리나라 몇 안 되는 고속도로 중 하나가 가로질러 나 있었다.
구루마 몇 대가 전부인 마을에서
매일 고속도로를 오가는 차들을 수없이 보지만,
그것은 늘 영화 속 풍경처럼 비현실적이었다.
20대가 되어 직접 차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그 세상이 현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에 다니며 유학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먼 바다 건너 남들의 이야기 같았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마음에 스쳤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퇴근 후 휘트니스센터에서 하루를 마감하곤 했다.
어느 날, 낯선 외국인이 운동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눈에 띄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외로워 보였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따뜻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호기심도 생겨서 말을 건넸다.
그 짧은 인사가 계기가 되어
며칠 뒤, 두 사람은 카페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그 인도인은 한국 대기업 부회장실에서 일하고 있었고,
인도 최고 MBA 출신이었다.
그는 담담히 속내를 털어놓았다.
“미국 MBA 출신들과 비교하면, 대우가 확실히 다릅니다.
조만간 미국이나 인도로 옮길 생각입니다.”
그 시절, 그 역시 인생의 다음 길을 고민하던 때였다.
전자공학 박사과정에 진학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길을 걸을지.
인도인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MBA를 하세요. 당신 커리어에 꼭 맞습니다.”
그 한마디가 그의 마음 속에 깊이 꽂혀왔다.
1990년대 말, 공대생이 MBA를 간다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반년 동안 치열하게 조사했고,
가능성을 확신하고는 마침내 결심했다.
‘어차피 도전한다면, 미국으로 가자.’
첫 장벽은 영어 시험이었다.
토플 리스닝 점수가 늘 발목을 잡았다.
몇 번을 봐도 최상위 스쿨 기준에 1~2점이 모자랐다.
마지막 한 번만 더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 시절엔 시험 결과가 한 달 뒤에 우편으로 도착했다.
결과를 모른 채 GMAT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야 성적표를 받았다.
봉투를 뜯자마자 그는 뛰어올랐다.
기준을 넘은 것이다.
GMAT은 더 애매했다.
첫 시험은 기준에 약간 미달했지만,
두 번째는 오히려 점수가 더 내려갔다.
원인을 알 길이 없었다.
답답한 그는 학원을 찾았다.
외국인 강사의 한마디가 전환점이 되었다.
“컴퓨터로 보는 적응 시험은
처음 몇 문제가 점수를 결정합니다.
그 문제들을 다 맞춰야 난이도가 높아져서 고득점이 가능합니다.”
그는 세번째 시험에서
그 전략 하나로 단숨에 목표를 넘었다.
독학에만 익숙해 있던 그는 생애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상은 혼자만의 노력보다, 제때 얻는 정보 하나가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다음은 에세이였다.
소재, 내용, 문체 모두 합격의 열쇠였다.
컨설팅을 받을 여유가 없어,
새로 생긴 회사에 가서 협상을 했다.
‘소재와 내용에 대한 조언만 해 달라’는 조건으로
비용을 1/4로 줄였다.
그리고, 회화 강사에게 식사를 대접하면서 틈틈이 도움을 받았다.
밤을 새워 글을 쓰고 고쳤다.
콩글리쉬가 묻어나는 문장이었지만,
본래의 색을 지우지 않았다.
꾸미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자는 전략으로 밀고 나갔다.
면접은 예상 밖으로 평온했다.
그가 준비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이유’였다.
“So what?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투박하지만 분명하게, MBA 전과 후의 인생 그림을 설명했다.
부족한 영어였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얼마 뒤, 국내 MBA 합격 소식이 먼저 들려왔다.
회사에서 지원을 약속하고 등록을 권했다.
그렇게 첫 학기를 시작한 3월말,
미국에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미국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에서
합격 통지서와 함께
학비와 생활비 전액 대출 지원 확약서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 순간, 꿈이 현실이 되었다.
‘정말 갈 수 있겠구나.’
주머니는 비어 있었지만, 길은 열렸다.
첫 학기 등록조차 막막할 만큼 비싼 학비,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듯한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
그럼에도 그는 끝내 문을 열었다.
그것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의지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었다.
그러나 곧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가족, 친척, 선배 모두 한국에 남으라고 했다.
안정된 생활, 회사의 지원, 국내 최고의 MBA 과정—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때,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이번이 아니면 평생 스스로를 원망하게 될 거에요.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가야 해요.
국내 최고와 세계 최고를 동시에 놓고 선택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요.”
그 말 한마디가 그의 등을 든든하게 밀어주었다.
젊음은 용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두려움과 설렘을 함께 끌어안고,
마침내 미지의 세계로 첫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