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의 글로벌 히치하이킹, 꿈을 좇아 2

2부. 무모한 비상, 낯선 하늘 아래 첫 기도

by Coo Lee

그는 참 무모할 만큼 용감했다.

미국이 어떤 곳인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어느 날 문득 떠나기로 결심했다.


학기는 9월 초 시작이었지만,

“일찍 가서 적응하는 게 좋다”는 선배의 말 한마디에

5월 말 사표를 내고 6월 초 비행기표를 끊었다.


마치 시험도 연습도 없이 링 위로 올라가는 권투 선수 같았다.


남대문 시장에서 두툼한 이민 가방 두 개를 샀다.

필요한 물건을 챙기다 보니, 어느새 출발 전날이었다.


그제야 미국에서 지낼 곳이 없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마음 한구석이 쿵 내려앉았다.


‘가서 찾으면 되겠지’라며 한국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

출발 전날 밤이 되자 묘한 공허함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해가 떨어지자, 이유 모를 불안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부랴부랴 학교 선배들이 만든 얇은 설명서를 뒤적이다,

가장 싼 숙소를 발견했다.


이름은 Divine Tracy Hotel.

학교 근처 여관 같은 곳으로 일주일에 약 250달러.

주변 호텔이 하루 150달러 정도였으니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여기다!’라고 생각했지만,

예약하려면 계약금을 은행으로 미리 송금해야 했다.


이미 국내 은행은 문을 닫은 시간.

급하게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전화를 걸었다.


긴장된 목소리로

“내일 아침 출발인데, 방을 예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차가웠다.

“미안하지만, 송금 확인이 없으면 예약해 줄 수 없습니다.

방이 하나 있긴 하지만,

도착 후에도 남아 있으면 입실이 가능합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몇 번 더 전화를 걸었으나

답은 변하지 않았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깊은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머나먼 타국에서

길거리에 나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결국, 모든 걸 운명에 맡긴 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준비보다 용기가 앞섰고,

그 용기마저 불안에 흔들렸다.


가족과 마지막 저녁을 함께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루가 어떻게 저물었는지도 몰랐다.


설렘은 사라지고, 걱정만 가득했다.

마음이 두근반 세근반 뛰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새벽,

김포공항을 향하는 버스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걱정으로 채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도,

작별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뒷모습이 눈에 밟혔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돌리면 발걸음이 멈출 것 같았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가족과의 이별이 실감났다.

창밖의 푸른 하늘과 솜사탕 같은 구름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숙소마저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하나?’

라는 생각으로 복잡하기만 했다.


그것도 잠시, 도착 후 이동 방법도 문제였다.

공항과 학교는 아예 다른 주에 있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설명서를 다시 보니 공항에서 직행 버스는 없었다.

기차역은 다운타운까지 나가야 했고, 짐은 너무 무거웠다.

비행기를 갈아타기엔 시간과 돈이 걱정이었다.

봉고차 형태의 셔틀이 있다는 문구가 마지막 희망처럼 보였다.


공항에 내리자, 김포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차와 표지판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한참을 묻고 헤맨 끝에,

설명서에서 읽었던 셔틀버스를 발견했다.


행선지를 재차 확인하고,

마지막 남은 한 자리에 간신히 올라탔다.


셔틀이 시내를 벗어나자,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TV에서만 보던 미국의 도시와는 달랐다.


회색 건물 사이로 미국 고유의 그래피티와 그림들이 보였고,

강 위를 가로지르는 2층 다리는

그가 평생 보아온 어떤 구조물보다 크고 복잡했다.


도시를 벗어나 끝없이 펼쳐진 숲과 아름드리 나무들은

순간마다 ‘이곳이 정말 다른 세상’임을 실감나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이 다시 밀려왔다.

서울–대전 거리쯤으로 생각했는데,

4시간이 지나도록 도착하지 않았다.


그제야 셔틀이 여러 도시를 경유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작정 덤빈 자신이 참으로 한심했다.

자괴감이 목까지 차올랐다.


드디어 목적지 도시 이름이 간판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셔틀 정류장은 학교에서 상당히 멀었다.


학교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이 시작됐다.

택시에는 짐을 다 못 실고,

버스는 있는지,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고민만 하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챈 운전사는,

마지막 승객이 된 그를 위해,

정류장에서 내려주는 대신 학교까지 30분을 더 달려 주었다.


“Thank you”라는 말이 목이 메어 잘 나오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 처음 느낀, 작은 친절의 힘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 Divine Tracy Hotel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무거운 가방을 하나씩 계단으로 옮기며,

‘방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목덜미를 짓눌렀다.


작은 프론트 쇠창살 너머,

낡은 전등 아래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마주한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를 기다렸다는 듯 방 하나가 그대로 비어 있었다.


짐을 옮기자마자

그동안 쌓였던 긴장과 불안이, 한꺼번에 풀리며 깊은 잠에 빠졌다.


새벽 일찍, 시차 때문에 눈이 떠졌다.

창밖은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오전이 되어도 거리는 한산했고,

캠퍼스와 시내의 경계조차 모호했다.


점심 무렵,

학교 안 서점 카페에서 빵을 먹으며 알게 되었다.

이미 방학이었고,

학교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준비도 계획도 없던 여정이었지만, 그는 결국 도착했다.

안도 속에서도 불안은 남았다.


앞으로 숱한 무지의 숲을 지나,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 했다.

그래도 그는 믿었다.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 닿으리라.


낯선 하늘 아래,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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