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인생에서 100억 자산으로 1

1부. 무에서 마이너스로

by Coo Lee

외딴 시골에서 태어난 막내아들에게는 돌아올 유산이 없었다.
유교적 전통과 남존여비,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모든 것은 열일곱 살 위 장남의 몫이었다.
그는 늘 장남의 그림자 뒤에 묻혀 있었고,
기대도, 지원도 없이 세상에 홀로 던져졌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시작된 삶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등록금 전액 면제와 일부 생활비 지원,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벌어 마련한 돈으로
그는 대학과 대학원을 버텨냈다.
대학교 시절엔 학교 고시실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대학원 시절엔 연구실 구석,
앵글 선반과 합판으로 만든 임시 잠자리에서
추위와 더위를 껴안고 겨우 잠을 청하곤 했다.
냉장고 하나 없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어렵게 마친 대학원 졸업 후,
사회생활의 첫걸음은 ‘마이너스’였다.
자동차 사고로 진 500만 원의 빚,
신입 연구원의 연봉은 고작 1천만 원이었다.
이리저리 아껴가며 우선 빚부터 갚아 나갔다.
1년 넘게 갚고 나서야
‘마이너스 인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희망은,
그렇게 처음으로 현실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의 ‘MBA’라는 세계를 알게 되었고,
그 길이 곧 자신의 미래라는 확신이 가슴 깊이 차올랐다.
도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2년에 최소 2억이 든다는데, 무슨 돈으로?”
망설이던 그에게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합격하면 방법이 생기겠지.
안 가는 건 선택이지만,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하는 건 그냥 핑계야.”

아내의 말이 그에게 다시 용기를 심어주었고,
그는 마침내 미국 최상위권 MBA 스쿨의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 믿기 힘든 기회가 눈앞에 펼쳐졌다.
당시 일부 명문 학교는
외국인 학생에게도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포함한
파격적인 대출 프로그램을 시험적으로 운영 중이었다.
포기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


하지만 그 선택 역시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또다시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에
가족들은 모두 강하게 반대했다.
믿어준 사람은 오직 아내뿐이었다.


2년의 유학을 마치고 다시 사회에 복귀했을 때,
가족들이 우려했듯, 그는 또다시 ‘마이너스’로 돌아가 있었다.
원금만 12만 달러, 당시 환율로 1억 5천만 원.
막막했다.
그러나 주저앉아 고민할 틈조차 없었다.
6년 넘게 정신없이 일한 끝에,
마침내 그는 그 빚을 모두 갚고
다시 플러스 인생에 들어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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