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이 Feb 28. 2024

한민족에 뿌리내린 오컬트

파묘(2024) - 주관적인 영화 리뷰

※ 본 리뷰는 '파묘'(2024)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한국산 토속 오컬트

이번엔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무속(무당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전통신앙)과 풍수지리를 다루었다.

 미국에서 불길한 일들을 겪고 있는 돈 많은 집안의 가장 박지용 사장(김재철)에게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법사 봉길(이도현)은 의뢰인의 조상,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의 묫자리가 문제의 근원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상위 1%를 책임지는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에게 동업을 제안합니다.

상덕은 파묘를 하되 개관도, 염도 하지 말아 달라는 의뢰인 지용의 요청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묫자리를 보러 가고, 그곳이 끔찍한 악지임을 알게 됩니다. 결국 상덕은 불길함을 느껴 의뢰를 거절해 보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묫자리를 파헤치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내 단순한 묫자리가 아니라 상상을 뛰어넘는 어두운 과거를 파헤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새 한국 오컬트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은 장재현 감독의 3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장재현 감독은 초기 때부터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들과 같이 전문적인 오컬트 장르물을 제작했습니다. 비록 흥행 성적은 그저 그런 편이고, 연속되는 이야기가 있는 공식적인 시리즈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마니악한 장르물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부분에서 대중들에게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볼거리를 보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검은 사제들'(2015) 이후 어설픈 엑소시즘 영화들이 처참하게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 한국 장르 영화계에 굉장히 뜻깊은 시리즈입니다.


현재 파묘의 흥행 기세는 대단합니다. 개봉 일주일도 안되어서 손익분기점(33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런 흥행 기세와는 별개로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양상이 있습니다. 전작들과 다른 양상을 띠면서도 2024년 한국 상반기 최고 화제작이 된 파묘는 대체 어떤 작품일까요?




오컬트 전문가가 만든 오컬트 전문가들의 세계

전문가들 캐릭터가 마치 어딘가에 실존할 거 같은 몰입감을 준다.

 장재현 감독의 이전작들과 본 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인공들입니다. 실질적인 주인공인 풍수사 상덕과 무당 화림에 이어 조연인, 장의사 영근과 법사 봉길이도 소위 말하는 오컬트계의 전문가들입니다. 장재현 감독의 이전작들도 서로 다른 종교관을 가진 전문가들이 교류를 이어갔지만 한국 전통신앙을 가진 무당들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초반에 무력한 모습을 통해 퇴마 대상의 무게감을 강하게 만드는 연출적인 장치에 가까웠습니다.


본작에 이르러서는 그 주인공들의 전문영역이 전통신앙이라는 연결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각자의 분야가 다르다는 게 특징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나름의 계획을 세워 일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캐릭터들에 대한 신뢰성과 작품 속 오컬트 세계관에 깊이를 부여합니다.


작품의 깊이는 제작자의 깊이라고 장재현 감독은 오컬트의 세계관과 그 특색을 살리기 위해 철저한 자료 조사와 문을 받은 것 같습니다. 대살굿, 동티, 도깨비놀음 등 무속신앙 관련 레퍼런스들을 충실히 따오면서 외국 민간신앙의 핵심을 잘 포착하여 민간신앙들끼리의 대립을 작품 내에 자연스럽게 엮었는데 오컬트를 전문적으로 다루어온 감독답게 뛰어난 활용력이 돋보입니다.


여기에 작품은 음지의 힘과 영역을 표현하는 데 있어 CG의 힘을 최소화합니다. 되려 아날로그적인 효과들과 다양한 연출들을 통해 허구라는 것을 떠올릴 여지를 남기지 않고 음산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확실히 비주얼과 연출, 사운드까지 장재현 감독 커리어 최고점으로 끌어올려 만든 분위기는 이견의 여지없이 걸작의 짐작케 합니다. 하지만 절반을 지난 이후의 전개는 예상치 못한 흐름을 타면서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 갈리기 시작합니다.




전반, 후반을 가르는 공포의 양식

숨겨져 있던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부터 호불호가 갈린다.

 중반을 넘어선 이후 작품의 전개는 굉장히 파격적입니다. 그도 그럴게 악령에 맞서 싸우던 작품에서 일본 요괴 오니가 등장했습니다.

워낙 충격적인 전개라 '파묘'(2024)의 후반 전개를 장르 변화로 공포감이 사라졌다고 볼 수 도 있습니다. 일단은 오컬트가 초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장르이다 보니 후반 전개도 오컬트 장르가 맞긴 합니다만 진짜 문제는 장르의 변화가 아니라 공포 양식의 변화입니다.


초반부의 전개는 명확히 이해가 불가능한 귀신, 즉 근원을 알 수 없고,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통해 공포를 조성했습니다. 주인공들에게 손쉽게 처리되었지만 친일파였던 부정한 과거를 드러내며 지용 일가 식구들을 살해하는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빠른 전개와 맞물려 뛰어난 공포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전개는 반대입니다. 음기의 힘을 지녔지만 실체가 존재하는 부정한 존재, 요괴로서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공포의 형태를 보여주었습니다. 주인공들의 전문 지식으론 대항이 불가능한 존재이기에 귀신보다 위협인 것은 맞지만 완급 조절을 위해 전개 속도마저 느려진 상태에서 작품이 친절하게 공포의 근원을 관객들에게 설명해 주기에 비교적 긴장감이 약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부분은 선명해진 공포의 실체가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겁니다.




침략자와 독립운동가

작품 후반부 주인공들의 행보는 일제의 잔재를 씻어내는 사실상 독립운동이다.

 객관적으로 '파묘'(2024)의 후반부는 초반부에 비해 강렬하지 못한 편입니다. 하지만 일본 음지에서 온 오니의 존재는 일제의 침략이라는 인상적인 구도를 만듭니다.

실체를 가진 존재인 오니는 타지에서 탄생한 음지의 존재임에도 양지로 강림하여 주인공들을 위협합니다. 그나마 음지에만 존재하는 귀신은 주인공들이 처리 가능했지만 오니는 양지에서 전쟁만을 부르짖으며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음지의 존재가 양지에 넘어왔다는 것은 그것을 상대하는 전문가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음양의 균형을 깨는 침략을 상징합니다. 기순애 스님으로 변장한 키츠네 음양사의 계략으로 한국의 균형이 깨지고, 풍수지리의 기운이 억눌리고 있는 형태 자체가 한민족 땅에 대한 침략과 수탈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독립운동가 철혈단의 유지를 이어받은 주인공들은 현대에 강림한 새로운 독립운동가들입니다.

이를 처음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성덕이 이 땅에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 오니를 무찔러야 된다는 대사를 내뱉는 장면입니다. 흐름이 깨지는 부분도 있지만 다행히도 지나치게 민족주의 적인 주제로 빠지지 않고 곧바로 동료의 생명을 구할 것을 강조하여 사건의 중심을 다시 전문가들의 서사에 맞췄습니다.


아무튼 음양의 균형을 통해 실제 일제의 침략, 수탈 행위와 독립운동을 은유한 구도 자체는 인상적이지만 앞서 말했듯 오니에 대한 정보들이 너무 친절하게 제시되어서 관객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저하되었습니다. 장편 작품만 3편, 그것도 오컬트 장르만 다루고 있는 전문 감독이 공포의 대상을 실체화하여 구체적으로 정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작품 내 음양오행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파묘와 음양오행의 의미

작품 내 음양오행의 요소들을 정리했다.

 작품은 한민족을 이루는 요소들을 음양오행의 요소들과 연결시켰습니다. 오니의 존재는 단순히 일제의 침략에 대한 은유가 아니라 숨겨진 친일파의 근원을 드러낸 겁니다.

파묘의 뜻은 묘를 파해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묘를 파해친다는 것은 조상을, 나의 뿌리를 파해치는 행위입니다. 이는 지용 사장의 일가를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지용 사장의 일가는 '밑도 끝도 없는 그냥 부자'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친일파라는 부정한 과거가 드러나며 지용의 일가는 밑(친일)도 끝(죽음)도 존재하는 부자였음이 드러납니다.


과거 조상과의 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존재하는 만큼 뿌리를 가진 나무는 한민족으로 연결된 등장인물들의 혈통을 강조하는 요소로서 캐릭터보다도 화면에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합니다.

작품은 초반부에 가족의 형태를 한 핏줄로 연결된 공동체로 정의했었는데 이에 상반되는 결말부 주인공들의 가족사진은 주인공 모두 각자가 떨어져 있을지언정 한 핏줄로 연결된 한민족이라는 공동체이자 가족임을 암시합니다.

서사를 제외한 화면 내에서는 지용 사장 일가가 사는 집, 풍수사 상덕, 장의사 영근의 일터와 같이 한민족들이 사는 장소에 나무를 강조함으로써 같은 민족 간의 연결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결국 친일파라는 뿌리 밑, 더 깊은 과거에서 나타난 오니는 땅을 망치는 부정함의 근원이자 일제의 치하를 벗어난 뒤에도 한민족이 격은 여러 고난의 원흉입니다. 정리하자면 땅(역사)을 파고들수록 더 깊은 과거의 근원이 나오는 겁니다.

피를 먹은 나무가 불과 쇠를 상징하는 오니를 무찌르는 것도 핏줄로 연결된 한민족이 일제의 침략과 그로 인한 부정한 부를 이겨낼 것이라는 맥락에서 연결성을 지닙니다. 작품에서 한민족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는 일제 때부터 내려온 거대한 묫바람이며, 파묘는 한민족의 역사(무덤)를 파헤쳐 숨겨진 부정한 것(일제의 침탈, 친일파)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이만한 토속 오컬트 또 없다

묘벤져스 후속작 내주세요.

 상덕의 상처처럼 한국의 근현대사 속 비극들은 분명 하루아침에 사라지는게 아닐겁니다. 허리가 분절된 한반도의 분단과 친일의 여파는 현실에서도 아직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영화의 태도는 한국을 위한 제령(際靈)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파묘'(2024)는 장재현 감독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중성을 지녔습니다. 물론 이 대중성이라는 게 득도 있고 실도 있는 게 대중성을 챙긴 만큼 작품이 친절해졌고 대사를 통해 설명하기 바빠 한계까지 질주할 수 있는 강렬한 소재의 힘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캐릭터들 역시 전작들에 비해 각자의 매력이 피상적인 부분에서 그치고 직업적인 면모를 제외하면 캐릭터 그 자체를 깊이 있게 활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파묘'(2024)는 단점만을 바라보기엔 독창적인 완성도가 높고, 대체제가 없는 강력한 오컬트물입니다. 무섭지는 않지만 주제의 균형을 잘 잡았고, 오컬트 장르적 요소들을 두루 활용하면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관객들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장재현 감독은 빼어난 분위기를 자랑하며 그동안 기대받아온 것에 화답하듯 더 많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오컬트 장르의 절충안을 찾고 있습니다. 분명 다음 작품도 대중성을 염두에 두면서 다양한 오컬트 요소들을 활용할 것입니다.

후반부가 되면 오컬트적 요소들에 대한 설명이 늘어나 플롯이 허술해지는 장재현 감독의 성향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후속작을 기대할만한 여백을 잘 만드는 감독입니다. 필시 후속작들도 단점 때문에 외면받는 작품이 되지는 않을겁니다.




※ 주석

풍수 - 음양오행설에 기초하여 민속적으로 내려오는 지술(地術)

무당 - 굿을 할 때 신령을 모셔 대접하는 사람

법사 - 귀신을 빙의시켜 가두는 사람

염 - 시신을 옷, 이불 등으로 감싸서 정리하는 작업

동티 - 흙을 잘못 다루어서 지신(地神)을 노하게 하여 받는 재앙

도깨비놀음 - 제주도 무당굿 중 하나로 빙의된 존재를 대접하는 굿

매거진의 이전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한 디스토피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