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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샤스크로니클 Feb 06. 2024

남의 행복을 구경하는 시대

마크 트웨인의 픽션과 인스타그램


눈여겨보던 인플루언서가 문득 생각이 나서 몇 년만에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방문해 보았다.


반짝이던 특별한 매력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감성은 그대로였지만 입고 먹는 모든 것들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깜짝 놀랐다. 일본 여행을 즐기던 그녀는 이제 한국인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의 고급 호텔에 지내며 칸예 웨스트가 다닌다는 식당을 드나 들었다.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에서 실컷 쇼핑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런칭한 브랜드의 제품을 홍보했다.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콘텐츠'를 위해, 또는 자신이 판매하는 브랜드의 '룩북 촬영'을 위해 하룻밤에 몇십에서 몇백만 원에 달하는 고급 호텔에서 사진을 찍는다. 미쉐린 쓰리스타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그 모습을 피드에 올린다. 몇 분 만에 수십만 개의 좋아요가 눌린다. 소비하는 모습이 소비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아주 당연한 공식인데도 아직 적응되지 않아 이따금 머리가 얼얼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떤 이가 무언갈 소비한다.

누군가 그가 소비하는 걸 본다.

그 사람은 그걸로 돈을 벌고, 더 소비하게 된다.

그럼 또 그가 소비하는 걸 구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는 더욱더 부자가 되고 이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소비하게 된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한다.

...무한 반복...


우리는 왜 남들이 소비하는 모습 그 자체를 소비하게 된 걸까?

왜 타인의 행복을 관전하는 데에 내 시간과 돈을 쓰게 된 걸까?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돈을 쓰는 사람이 오히려 부자가 되는 시대.

온전히 나만의 쾌락을 위한 소비가 실제로 나를 위한 투자가 되어버린 멋지고 무서운 시대.




문득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문구가 떠올랐다.


“Truth is stranger than fiction, but it is because fiction is obliged to stick to possibilities; truth isn't.”

"진실은 허구(픽션)보다 낯선 것이다. 허구는 가능성에 충실해야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Following the Equator: A Journey Around the World, 1897』에서 발췌


마크 트웨인은 현실에서 때때로 너무 특이하거나 예상치 못할 사건들이 벌어져, 소설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오히려 능가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현실에서의 무한한 가능성(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에 느낀 감정들을 투영해서 바라보니 좀 더 색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허구'를 위해 '예측할 수 없는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종차별과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여성참정권을 주장했던 선구자적 마인드를 가진 마크 트웨인옹. 그에게 현실은 어쩌면 소설보다 더 두려운 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당장 눈앞의 진실에는 눈을 돌린 채 오늘도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허구를 구경한다.

그 허구 속에는 그럴싸하고 예쁜 가능성이 있다. 나도 언젠가는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쩌면 조금은 처절한 기대감이 있다.


"이번 주에 저 카페 가봐야지."

"나중에 저 책 읽어봐야지."

"언젠가는 저 호텔에서 수영해 봐야지."


인스타그램은 마크 트웨인이 말하는 픽션 그 자체다. 아무리 꾸밈없는 솔직한 게시물이라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의 대중 앞에 전시되는 순간 모든 진실은 그저 가능성을 품은 허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허구를 간절하게 믿고 싶어 한다.




유발 하라리 역시 진실보다 더 믿을만한, 더 믿고 싶은 허구에 대해 언급했다.


"소크라테스는 진실을 택했고, 처형당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학술 체제들은 진실보다 사회적인 단결을 우위에 둔다. 그런 이유로 그것들은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왜 허구가 진실을 이기는가?』에서 발췌


인스타그램이라는 커다란 잡지 안에 꼭지처럼 들어가 있는 다양한 종류의 허구들은 모두 다 일제히 "행복을 추구하자"는 건강한 구호를 외친다. "잘살아 보자"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곳에서 삶을 위한 양질의 지혜를 얻기도 한다. 무한한 정보와 세상을 향한 큰 창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 내 현실은 나만의 것이다. 타인의 행복은 타인의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팔로우를 하고 저장을 해도 그 행복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이력서에 인스타그램 주소를 첨부해야 하는 시대. 인스타그램이 퍼스널 브랜딩이라고 하는 시대. 인스타그램을 잘해야 무엇이든 잘 살 수 있고 잘 팔 수 있다는 이 시대.

환영과도 같은 가능성이 난무하는 매일매일을 흘려보내며, 어쩌면 진실은 우리에게 점점 더 낯설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불안정한 대기층에서 빛이 굴절하면서 생기는 사막의 신기루.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보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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