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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티너디 May 06. 2023

서천

소설

 

1

 차진 흙이었다. 발가락을 오므렸다. 비누 거품이 일 듯 흙더미들이 발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 흙이 머금은 습기가 서늘하게 발을 감싼다. 발을 내디뎠다. 흙더미가 숨결을 내뱉는다. 비릿하고 차가운 숨이 폐를 가득 채운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심호흡을 내신 뒤 문자를 보냈다.

 “한락도령님, 도착했습니다.”

 “들어오세요. 문은 열려있습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나는 프로필을 클릭했다. 옹골찬 꽃받침에 검붉은 꽃잎이 넘쳐흐를 듯이 펼쳐져 있다. 샛노란 수술들이 옷핀처럼 빳빳하게 세워진 채, 무언가를 고정하는 듯 박혀있었다. 처음 카톡을 보냈을 땐 조화라고 생각했다. 너무 활력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마치 꽃 모양의 풍선에 한계까지 바람을 불어넣은 듯했다. 탄력적인 표피가 벌어져 안이 비칠 정도의 풍선. 이곳에 도착한 지금은 그것이 생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산자락 중턱에 있는 이 가게는 차로 30분 정도 산길을 타야 했다. 가파른 산길을 넘다 보면 길목을 가로막는 정문이 나타난다. 나무기둥 두 개에 기와가 얹혀있는 한옥 형태의 정문이다. 차 하나도 들어가지 못할 크기의 작은 대문엔 지붕의 반절 정도 크기의 명패가 걸려 있다. 옻칠한 듯 광택을 내는 명패에는 금박으로 ‘舒川宮라고 쓰여 있다. 지도로 확인하면 ‘카페 서천’이라고 찍히니 맞을 것이다. 지도 아래에는 수십 개의 별점과 후기가 달려있다. 이 카페는 블로그와 인스타에서 사진 맛집으로 유명한 카페다. 피드에 뜨는 수십 개의 사진은 모두 똑같은 자리에서 찍은 듯 보였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드넓은 흙밭이었다. 그리고 흙밭에는 묘목이 빼곡하게 심겨 있었다.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묘목은 각자 길이와 형태가 모두 달랐다. 줄기에 달린 가지들이 모두 하늘을 향하듯 솟아올라 촛불 형태를 이루는 것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잔가지가 뻗어 나와 덤불 같은 형태를 이루는 등 가지각색의 묘목들이 흙밭을 가득 채웠다. 제멋대로 자란 듯한 묘목들에도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묘목들이 길에는 닿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흙밭에도 길이 있었다. 흙의 색깔이 달랐다. 묘목들은 검은 옥토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 수많은 묘목 사이로 붉은 기를 머금은 황톳길이 이어져 있었다. 묘목들은 황토로 가지를 뻗지도 않았다. 무성하게 뻗어져 나가던 가지들도 튕겨 나가듯 위로 솟아오른다. 발밑을 확인해보면 모두 황톳길 앞에서 굽어진다. 묘목들이 내준 황톳길의 입구에는 나무로 만든 안내판이 박혀있다.

 ‘정원에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들어와 주세요. 여러분들의 노력 덕분에 꽃이 피어있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모든 묘목에 같은 종류의 꽃이 피어있다는 것이었다. 프로필에 있는 검붉은 꽃잎에 노란 수술이 박혀있었다. 가지에 달린 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싱싱했다.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빽빽하게 묘목이 심겨 있으면, 높게 드리운 가지에 그림자가 지거나 뿌리가 얽혀 시드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정원의 묘목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생기가 넘쳤다. 자라나는 데 그런 것들은 필요 없다는 것을 표현하듯, 모든 묘목이 가지를 펼쳐내고 얽혀 있었다. 얽힌 가지들은 사람 키보다 높이 얽혀 하나의 벽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지 곳곳에는 꽃들이 보석처럼 박혀있었다. 오늘은 비가 내리는 그믐날이었다. 달빛 한 점 없는 밤에도 꽃은 만발하고 있었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길의 끝엔 한옥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옥 형태의 카페다. 낮에는 분명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와 처마에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만 산발적으로 터져 나올 뿐이었다. 한옥을 따라 두 뼘도 안 되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반대쪽엔 마른 수건이 개어져 있었다. 나는 시냇물에 흙을 씻어내린 뒤 수건으로 발을 닦았다. 드디어 카페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심호흡을 내신 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카페 접수대였다. 주황색 무드등이 켜져 있는 접수대에는 앞치마를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조명이 약해 겨우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잡아당긴 듯 치켜 올라간 눈꼬리 끝엔 붉은 기가 칠해져 있었다.

 “제이니님 맞으시죠?”

그가 활짝 웃자 눈꼬리가 초승달 형태로 접혔다.

 “네, 인스타로 구매 요청….”

 “준비해놨습니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시죠.”

그가 손을 뻗은 곳을 따라갔다. 접수대 바로 앞에 자그마한 원목 책상이 있다.

 “기다리실 동안 차라도 드시고 계세요.”

 “아, 물건만 주셔도 괜찮은데….”

 “차도 패키지에 포함된 항목이어서요.”

그는 신이 난 듯 흥얼거렸다. 쟁반에 도기들을 이리저리 담아 내 앞에 가져다 놨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새도 없이 쟁반을 식탁 위에 올려두곤 가게 뒤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도기들을 살펴봤다. 찻잎이 담긴 철제 그물망이 뚜껑에 달린,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찻주전자였다. 비를 맞아 몸이 서늘해진 참이었다. 차를 따르니 달큰한 내음이 퍼진다.

 ‘생각보다 따뜻하시네.’

물건이 그런 종류다 보니, 그걸 파는 사람도 차가울 것으로 생각했다. 구매 문자를 넣었을 때도 워낙 답변이 사무적이어서, 차가운 사람이라고 오해했다. 차를 입에 머금자 박하 향이 입안에 퍼졌다. 차를 목으로 넘기고 눈을 뜨니 그가 무릎을 수그린 채 앞에 서 있었다.

 “제가 잠들었나요?”

 “눈은 감고 계셨어요.”

그는 탁자에 도자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도자기는 양손으로 가려질 정도로 작았다.

 “죄송해요. 요새 잠을 못 자서….”

나는 미안한 마음에 중얼거리며 도자기를 건네받았다. 도자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져 끝엔 검지 하나만 들어갈 정도로 작아졌다. 나는 도자기를 들어 안을 살펴봤다. 흑색 가루 같은 것이 가득 차 있다. 흔들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 식물이라고 들었는데요.”

 화분이 이렇게 생기면 안 된다. 이렇게 좁은 구멍에선 햇빛을 받을 수도 없을 것이며, 물도 썩을 것이다. 그나마 콩나물은 기를 수 있겠지.

 “저주꽃 최상품 씨앗입니다. 꽃만 피우시면 바로 사용 가능하세요.”

한락도령은 물건에 자신이 있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이런 형태면 햇빛도 못 받을 텐데 어떻게 꽃을 피워요?”

내 질문에 그는 이해를 못 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이어 손뼉을 마주치더니 크게 웃었다. 적막한 카페에 그의 웃음소리만 울려 퍼졌다. 한참을 웃던 그는 심호흡한 뒤 말을 이었다.

 “이건 햇빛으로 자라는 게 아니에요.”

 여러 식물을 키워봤지만, 햇빛과 물이 필요 없는 식물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몸을 키우고 꽃을 피운단 말인가.

 “설명해 드리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이래서 제가 판매 패키지에 차를 넣어두죠.”

그는 신이 난 듯 접수대로 가더니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2

 그는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쟁반엔 찻주전자와 손바닥 크기의 접시가 놓여 있었다. 접시에는 납작하게 펼쳐진 빵이 놓여 있었다. 갈색의 탄 자국이 군데군데 나 있는 빵 위에는 하얀 알갱이가 중앙에 박혀있었다.

 “먹어봐요, 소금빵이예요.”

생김새는 인도의 난과 비슷했다. 그의 권유로 나는 빵을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빵은 질기고 딱딱했으며, 쓰고 짰다. 당황스러운 감각의 연속에 나는 얼굴의 온 근육을 집중해 이것을 넘기는 데만 집중했다. 접시 가장자리에 빼곡하게 그려진 물고기를 세며, 밀가루 덩어리를 겨우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우리 둘이 배불리 먹을 정도는 있어요.”

그는 빵을 찢어먹으며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순식간에 빵 접시는 비워졌다. 자기가 혼자 먹을 거면 왜 가지고 왔는지. 나는 접시를 구석으로 치우고 도자기를 들어 보였다.

 “이 꽃은 어떻게 키우면 되죠?”

 “자시(子時)에 맞춰 물만 주세요.”

그는 입안에 남은 빵을 우물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들더니 찻주전자를 입으로 기울였다. 입안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경악하며 그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화를 이어갔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달큼한 향기가 진동했다.

 “치성이나 기도드려본 적 있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다. 종교는 상관없었다. 그저 내 일생을 괴롭히는 이놈을 끊어낼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보시면 항상 물을 올려두고 기도를 드려요. 물은 혼을 녹일 수 있거든요. 깨끗한 물에 혼을 녹여 이 씨앗에 주는 거죠.”

 “뭐를 녹이면 되는 거죠?”

 “저주요. 내 육신과 혼을 갈아 짐승들의 먹이로 준다고 해도, 그 육시랄 놈을 찢어버릴 수 있다면 괜찮다는 마음가짐이죠.”

 마지막 말을 꺼내는 순간 그의 눈이 빛났다. 나를 가늠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네가 그걸 할 수 있을 만한 놈인지 아닌지 훑어보는 눈빛. 비슷한 걸 부탁했던 무당에게서 자주 봤던 눈빛이었다.

 “그거면 되나요? 보통 이런 건 굿이나 복잡한 절차 같은 게 필요하다고 하던데요.”

 “그런 건 저희가 이미 다 해서 판매하는 거죠. DM으로 예약까지 미리 받아서 판매하는 상품인데. 즉석밥 먹으려는데 밥솥이 필요하다면 누가 사겠어요?”

 그는 팔을 크게 휘두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도자기를 양손으로 소리가 날 정도로 쳤다. 그는 내 얼굴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성공하셨다면 49일 안에 꽃이 한 송이 필 거예요. 그 꽃을 꺾으면 살을 날릴 수 있는 거죠. 살, 비방. 손님 편하실 대로 부르시면 돼요.”

 “꽃이 안 피면….”

 “못 피워냈으면 나가리죠. 미리 안내해 드렸다시피 십중팔구 실패할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일이네요.”

 “그러니까 기적이죠. 이치로 설명할 수 없는 걸 눈앞에서 보여주는 것.”

 “아니요, 제가 실패할 거라는 거요.”

 나는 도자기를 그로부터 뺏어들 듯이 집어 들며 말했다. 그놈이 고통받는다면 나는 온몸을 불태울 수 있다. 10년 동안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나는 도자기를 양손으로 받쳐 품에 안은 채 문으로 걸어갔다. 한락도령이 문으로 뛰어가다시피 걸어나가 문을 열었다.

 “그래서 당신한테 파는 거예요. 이거 아무한테나 파는 거 아니거든요.”

문을 열자 세찬 빗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부슬비는 어느새 소낙비로 변해 있었다. 세차게 내리꽂히는 빗줄기가 바닥에 튕겨 나오며 온몸을 때렸다.

 “천벌이 두렵진 않으세요?”

 나는 한락도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빗속에서 지금껏 만났던 무당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 사주를 보곤 안쓰러운 강아지 쳐다보듯 보던 놈들이었다. 뭐라도 들어줄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한테 살을 날릴 수 있냐는 말에 태도가 돌변했다. 살을 날리면 신령에게 천벌을 받는다며 거절할 뿐이었다.

 “제가 천벌을 받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그는 처마 바깥으로 팔을 뻗자, 도포가 물에 금세 적셔졌다. 그는 양손으로 물을 담더니 세수를 하곤 말을 이었다.

 “신이 우리에게 기적을 내려준 거잖아요. 그만큼 신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이 저주꽃이 신들이 주목할 만큼 영험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없이 순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일말의 두려움이나 죄책감도 없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물은 아무거나 상관없나요?”

 “상관없어요.”

 “그러면 여기서 줄게요.”

 나는 도자기를 양손을 치켜 들고 정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빗줄기가 바늘을 파고들 듯이 온몸을 찔렀다. 멍으로 가득 찬 몸에 쑤셔왔다. 나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구천에서 떠도는 아버지를 멸해주세요.”

입을 열 때마다 빗물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비릿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3

 서천을 갔다 온 후에도 그것은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술의 휘발성 냄새와 담배의 찌든 냄새가 섞인 숨결. 우악스럽게 허벅지를 움켜쥐는 손아귀에 박혀있는 굳은살, 몇 배는 거대한 몸뚱이로 나를 조이는 통증. 아버지가 죽은 후 10년 동안 나는 매일 밤 3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발작하며 일어나면 땀에 시트가 흥건히 젖어있다. 방금까지 손이 닿았던 부위엔 새까만 멍이 들어있다. 나는 미리 개 둔 수건으로 온몸을 구석구석 닦았다. 그리고 시트를 벗겨내 준비해둔 새 시트로 갈아 끼웠다. 마지막으로 땀 한 방울도 허락하지 않을 듯 수건으로 온몸을 거칠게 문지른다. 땀에서는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면 잠이 들 수 없다.

 “이걸 드시면 잠드실 수 있으실 거예요. 용량을 꼭 지키셔야 합니다.”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지진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밀린 빚을 갚듯 생생한 감각이 몰아쳐 왔다. 그것은 사채업자처럼 무슨 수를 써서든 나를 찾아왔다. 다시 잠이 들기 전 나는 정수기에서 냉수를 내렸다. 그리고 시계를 쳐다봤다.

 “하루 남았네.”

 이 악몽은 나를 12시에 깨운다. 덕분에 하루도 빼먹지 않고 화분에 물을 줄 수 있었다.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 분명 꽃이 필 것이었다. 나는 도자기 안으로 물을 흘려 넣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멸하길 기원합니다.”

이제 할 일이 끝났다.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뉘었다. 온몸이 얻어맞은 듯 뻐근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갈 준비를 했다. 아버지의 유골이 담겨 있는 봉안당으로 목적지를 찍었다. 이 유골은 천륜이 유일하게 나에게 남겨준 것이었다. 가출한 지 몇 년이 지나도 아버지의 소식은 종종 전해졌다. 우리는 친족 서류상으로, 천륜으로 묶여 있었다. 한쪽 끝을 치면 실 전체가 요동치듯 아버지의 소식은 나의 삶을 뒤흔들었다. 실 끝에서 아무리 내달려도 더욱 예리하게 나를 조여들 뿐이었다. 채무로 소식을 전하던 아버지의 마지막 소식은 시신 인수에 관한 동의서였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바로 화장할 수 있을까요?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요.”

 서명을 마치자마자 나는 장례지도사에게 물었다. 장례지도사는 나의 질문이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이곤 서류를 꺼냈다.

 “무빈소 장례로 가능합니다. 비용은 100만 원 정도 예상됩니다. 80만 원 이상으로 상한 금액이 있으시면 최대한 맞춰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류 몇 개에 사인하고 돈을 냈다. 이틀 뒤에 아버지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에게 안겼다. 그것은 삶을 이겨온 나에게 주는 명패였다. 네가 나를 아무리 부서트린다고 해도 나는 살아남았다. 너는 도자기에 담겨 평생 구천에서 떠돌아라.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내가 천륜으로부터 도망친 그 날, 끝으로부터 시작되는 윤회의 소용돌이에 나를 밀어 넣었다.

 봉안당은 여느 때처럼 한산했다. 명절만 아니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아버지의 유골을 확인하고 나오는데,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허리가 굽은 노인이 내 셔츠 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죠?”

노인이 쉰 목소리로 들릴 듯 말 듯 물었다. 당연히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좁은 봉안당에서 몇 번이나 마주치다 보면 얼굴이 익기 마련이다. 그녀가 들고 들어간 곰인형을 우연히 내 옆자리에 발견한 적이 있었다. 거기엔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딸이 좋아했던 빵이야. 저 안엔 음식 같은 거 넣으면 안 되니까….”

나를 붙잡은 그녀의 다른 손엔 빵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굳어있는 나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그녀는 내 손에 억지로 빵을 쥐여줬다.

 “딸이 살아있다면 자네 나이였을 거야. 늙은이의 주책이라고 생각해주게.”

 손을 뿌리치며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의식 마지막 날에 이런 곳에서 부정 탈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손을 자연스럽게 떨어트리기 위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 순간.

 “자네 부모님도 자네에게 고마워할 거야. 이렇게 그를 기억해주잖니.”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거칠게 손을 빼냈다. 할머니는 충격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할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제 거 언제 봤어요?”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고 바닥에서 끙끙거릴 뿐이었다. 소란이 일자 관리인이 뛰어나왔다. 나는 관리인에게 명함을 건네주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문을 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자기에 햇빛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나는 신발 벗는 것도 깜빡한 채로 도자기를 향해 뛰어갔다. 햇빛은 방의 반절까지나 차오르고 있었다. 여름이 가까워지자, 남향 창문으로 햇빛이 하루 다르게 침투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씨앗이 잘못되었을까 도자기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리고 도자기의 입구 끝에 나무줄기가 돋아난 것을 확인했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얇은 나무줄기가 입구 끝자락에 걸쳐 있었다. 그 끝엔 꽃이 피어있었다. 활력을 터질 듯 머금은 검붉은 꽃. 서천의 정원에서 봤던 그 꽃이었다. 정원에서 봤던 꽃을 그대로 크기만 작게 만든 듯했다. 이것도 현실감이 없는 활력을 띄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부엌에서 칼을 꺼내 들어 나무줄기를 그었다. 꽃은 줄기에서 튕겨 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의식은 끝이 났다. 무엇이 변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4

 드론 화면이 뉴스로 송출되고 있었다. 화면엔 흙더미에 반쯤 묻힌 봉안당이 송출되고 있었다. 꽃을 자른 날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비였다. 장맛비는 며칠 내내 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내린 비는 산을 무너트렸다. 교외에 지어진 봉안당은 배산임수를 따진 듯했다. 하지만 액운을 막아준다는 산이 무너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 한 듯했다. 뉴스에선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속보를 내고 있었다. 화면은 전환되어 유족들의 인터뷰 화면을 잡았다. 나는 지도도 찍지 않고 봉안당으로 차를 몰았다.

 장례식장은 난장판이었다. 유골함은 쓴 돈에 따라 층별로 나뉘어 보관되어왔다. 토사물이 타워를 덮쳐 2층까지 사방에서 막힌 상태였다. 그나마 3층까지는 흙이 쌓이지 않았다. 3층에 유골함이 있는 사람들은 빌딩이 무너지기 전에 유골함을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흙더미에 드러누워 우는 사람. 팔짱을 끼고 한숨만을 내쉬는 사람들. 분을 못 이겨 소리치는 사람들. 온갖 소리가 장례식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미안해, 내가 미안하다!”

저 아래 파묻힌 유골함에 소리치고 있었다. 우비를 쓴 장례식장 관계자들이 유족들을 향해 걸어왔다. 어디선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유족들이 달려들더니 장례식장 관리인들의 멱살을 잡았다. 경찰들이 나서도 드잡이는 한동안 이어졌다. 나는 어디에도 낄 수 없었다. 아버지 유골함은 1층에 있었다. 저 높이의 흙더미를 견딜 리가 만무했다. 장맛비마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미 유골을 담고 있던 도자기는 깨져 저 흙과 섞였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절을 했다. 바닥에 엎드리자 온몸에 진흙이 묻었다. 일어서서 걸어갔다. 흙더미에 덮인 봉안당이 한눈에 보일 때까지 걸어갔다. 산을 향해 다시 절을 했다. 아비규환을 뒤로 한 채 나는 그곳을 떠났다.


5

 내가 서천을 다시 찾은 것은 보상제도가 일단락된 후였다. 1심의 결론은 이 사태는 천재지변이라는 것이었다. 산이 무너진 것을 예상할 수 있다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근거였다. 유족들은 재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나는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남기고 연락을 차단했다. 내가 없어도 소송을 할 유족은 많았다. 전화를 거절하고 나서야 도자기가 눈에 들어왔다. 저걸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멋대로 버리기엔 찝찝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용도가 다한 물품은 반납하기로 했다. 나는 지도에 서천 카페를 검색했다. 하지만 아무리 확인해도 서천 카페가 지도에 찍히지 않았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차를 몰았다.

 서천을 온 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서천은 몇 년의 세월을 짊어진 듯 무너져 있었다. 대문은 몇 년은 관리 안 한 듯 헤져 있었다. 명패의 옻칠은 빛을 잃었고, 금박은 거의 떨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줄지어져 있었다. 황량한 고목들 앞에서 정장 차림의 남녀 3쌍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가 물었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여기 유명한 카페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그 사람 여기 팔고 떠났어요.”

 내 질문에 한 여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옆에 있던 남자가 말을 이었다.

 “저희가 인수했죠.”

 “애초에 인스타 카페는 오래 장사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 3년 지나면 권리금 올려서 파니까.”

 “그래도 그나마 싸게 샀지.”

남녀들은 내 질문은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들끼리 말을 이어갔다. 나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물었다.

 “장사 꽤 잘되지 않았나요?”

 “그치, 사시사철 핀 동백꽃으로 유명했지. 근데 어느 순간 다 저버렸어.”

 “동백꽃이 여름이면 지기 마련인데 어떻게 꽃을 유지한 모양이더라고.”

 ”그래도 이번 여름은 못 버텼나 봐. 덕분에 권리금 깎아서 싸게 샀지.”

나는 바닥을 내려다봤다. 바닥에는 떨어진 꽃들과 잎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제야 나는 여기가 정원이었다는 걸 알아챘다. 정원에는 앙상한 고목들만 줄기를 드러낸 채 흉물스럽게 뻗어져 있었다. 흙길은 꽃과 잎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을 집어 들었다.

“듣자 하니 남들 해코지하는 물건도 팔았다는 소문도 있던데 천벌 받은 거지.”

 꽃은 여전히 새빨간 발색을 띠고 있었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색깔이 더욱 선명했다. 꽃받침 끝엔 나무줄기가 가시처럼 박혀있었다. 절단면이 송곳처럼 예리했다. 집어 드는 꽃마다 모두 똑같은 형태였다. 이건 꽃이 진 게 아니었다. 꽃을 자른 거였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잠시 둘러볼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 한 장은 찍고 싶어서요.”

 나의 요청에 일행은 눈길도 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낙엽들을 밟으며 카페로 달려갔다. 등 뒤로 일행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줌마도 부동산 해볼 생각 없어요? 이게 돈이 되는데.”

카페를 흐르고 있던 강물은 마른 지 오래였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는 전에 방문했던 그대로였다. 원목 형태의 기둥과 모던 형식의 식탁과 의자도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저녁노을이 카페 안으로 뉘어 들어가고 있었다. 노을은 카페 접수대 끝에 걸쳐 있었다. 접수대에는 접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접수대로 걸어갔다. 접수대 위에는 물고기 모양의 테두리가 그려진 접시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눌어붙은 빵이 있었다.

 “배불리 먹일 정도는 된다.”

나는 빵을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빵에는 곰팡이가 새하얗게 덮여 있었다. 빵을 집어 들고 씹었다. 달큼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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