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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승 Apr 02. 2024

말 없는 아이

 그때의 나는 아직 문밖으로 혼자 나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시기였다. 그 시절 현관문은 단단하고 두꺼운 유리로 되어 있었고, 녹슨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밀어 잠그는 형태였다.


세 들어 살던 조그만 우리 집 옆에는 주인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다. 그들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대체로 친절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그들을 좋은 사람으로 분류해둔 것만은 확실하다.


어쩌다 그들의 웃는 미소가 기억날 듯 말 듯 희미하게. 튤립 뿌리에 대해 상상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무어라 말을 걸었던 일이, 엄마가 웃으며 대답하던 대화가 기억이 날 것만도 같은데ㅡ 나도 이젠 당시의 엄마보다도 나이가 들어버린 것이다. 그분들은 어쩌면 튤립 뿌리처럼 고요히 잠들어 계실지도 모르겠다.


화장실은 집 밖에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아빠 목에 매달려 화장실까지 따라갔던 기억이 있다. 공기가 차가웠고 아빠의 턱은 까끌했으며 팔은 단단했다. 적어도 그 팔 안에서 나는 그다지 겁날 것이 없었다.


주인집 할아버지, 할머니의 화단은 잘 꾸며진 정원이나 다름없었는데, 조각상들까지 곳곳에 배치해 두셨던 덕분에 나와 동생은 멋들어지게 옷을 입고 조각상들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종종 사진앨범을 펼쳐보며 화단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말하곤 했다. 꽃을 심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가끔 희미한 기억으로 남은 노부부가 그리웠다. 그들이 가꾼 정원처럼 화단을 갖고 싶었다.


정작 오랜 시간이 지나 그런 집에서 살게 되었을 땐, 그다지 좋은 기억을 만들 일이 없었다. 그래도 화단 깊숙이 유리구슬이나 소중히 여기던 무언가를 보물처럼 묻어두긴 했었다. 그걸 발견할 누군가가 과연 내가 그랬듯이 소중히 갖고 놀아줄지는 모르겠다. 시대가 바뀌었음을 매 순간 체감한다.


그 시절의 나는 자주 불안했다.

두꺼운 유리문안에서 아빠나 엄마를 기다렸다. 그들이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 나를 사랑하지만 언제든 떠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가끔 삶이 버거워 보였다.


엄마나 아빠가 물속에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자주 속으로 빌었다. 빨리 돌아오게 해주세요. 바다로는 안 가게 해주세요.


나는 자주 말을 삼켰다.


그래서 말 없는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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