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다시 진화하면 돼.”

<아무튼, 디지몬>을 읽고

by 야자수


친구들과 양귀자 작가의 『모순』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주제를 던진 건 내가 아니었는데, 친구 J의 말이 몇 달간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인생을 그릇에 비유한다면, 새로운 경험은 그릇에 무언가를 계속 채워넣는 거야. 근데 말이야, 인생의 부피를 늘리는 건 그 그릇이 깨질 때인 것 같아. 한 번쯤 깨져봐야 인생이 확장해.”


그래서 나는 가만히 컵을 쳐다봤다. 얘는 언젠가 깨질까? 깨진다면 그 조각들은 또 뭘 담게 될까. 그릇은 깨질 필요가 있는 걸까. 그릇의 본질이 담는 것이라면, 굳이 그것을 깨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선란 작가는 이 고민을 교수님에게서 해결한 것 같다. “그렇게 손바닥으로 자신의 바닥을 쳐봐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릴 줄 아는 거야.” 교수님은 그렇게 말했다. 바닥을 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차가운 바닥이 손바닥을 찌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손을 떼지 않는 건, 그게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 거란 걸 알기 때문일 거다.


나는 디지몬들이 그 답을 제일 잘 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진화는 누군가의 응원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 태일이가 아구몬을 강제로 진화시키려 했을 때, 아구몬은 스컬그레이몬이 되어버렸다. 어둡고 거칠고, 아무도 원하지 않은 방향이었다. 그때 태일이는 깨달았다. 진화는 강요할 수 없다는 걸. 아구몬이 스스로 ‘진짜로 싸워야겠다’고 느낄 때에야 비로소 워그레이몬이 되니까.


진화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실수를 반복하고, 방향을 잘못 잡고, 때로는 아예 멈춰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디지몬들은 멈춰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실수는 괜찮다고, 다시 진화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괜찮아, 다시 진화하면 돼.”


그 한 문장이 가끔 나를 구한다.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 ‘이 상태도 어딘가에서 시작될 거야’라고 믿게 만든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걸 디지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잘못된 진화를 해도, 퇴보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멈춰있지 않는 거라고.


진화는 외부의 승인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올라오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디지몬은 이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형태를 바꾼다. 때로는 강해지기도 하고, 다시 작아지기도 한다. 나는 그런 디지몬들이 좋다. 유연하고, 흐르고,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니까. 강하기만 한 것보다, 그렇게 흐르면서 계속 존재하는 게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디지몬 어드벤처는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인생은 한 번의 선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잘못된 선택도 결국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진다고. 중요한 건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끝까지 나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겪는 여정은 결국 우리 삶과 닮아 있다. 진화는 한 방향으로 곧게 뻗어가는 게 아니라, 돌고 돌아서 결국 자신만의 형태를 찾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의 그릇은 깨지고, 바닥을 치면서 조금씩 만들어간다. 나만의 모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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