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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민 Feb 26. 2022

막내작가 다섯 번째 이야기

그만두겠다고 말해야겠다.

"나 그만두려고 못해먹겠어"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말했다. 일하면서 수도 없이 습관처럼 했던 말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줄 알았던 친구들은 마지막 문장 '못해먹겠어'라는 말에 심각성을 느꼈던 걸까 왜 그러냐고 물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다음 스튜디오 녹화 주제에 대한 자료조사를 해야 하는데 암만 찾아도 나오질 않았다. 서브작가님들께 자료가 잘 안 나오네요.. 팁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일단 이렇게 5개 정도 찾아서 복붙 해주고 좀 추가로 찾아줘요. 일단 선배가 알려준 자료들을 복붙 해서 넣고 추가로 찾아보려는데 정말로 너무 안 나왔다. 그래서 선배가 준 5개 자료에 내가 찾은 2개의 자료만 보내고 퇴근을 했다. 다음날 아침 카톡이 왔다.


"네가 기사자료에서 준거 봤는데 여기서 네가 찾은 거 몇 개니...? 그날 찾아서 넣으라고 한건 다 넣은 거고? 

내가 찾은 거 빼고 네가 찾은 건 몇 개니?


사실 내가 찾은 자료는 두 개 밖에 없었다. 


"효능은 기본 자료인데 네가 찾은 건 두 개밖에 없고 그럴 거면 너를 내가 왜 시키겠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도 억울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고 주제랑 다른 이야기들만 주야장천 하는 것을 붙여놓을 수는 없을 판국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올린 건데.. 솔직히 칭찬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고생했어~ 라는 말 한마디면 나도 저렇게 까지 속상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러게 냉전(?) 아닌 냉전은 그날 아침부터 계속됐다.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퇴근을 하기 전까지 업무 외에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했고 심지어 밥 먹을 때 나누던 일상 이야기는 더더욱 없었다. 사실 선배는 계속 말을 붙이려고 했으나 내가 소통을 거부한 거일 지도 모른다. 사실 저렇게 까지 내가 속상했던 이유는 저 때 당시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의심에 계속 빠져있던 때였던 상황이었다. 사실 나는 계속 내가 이일을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한 일이니 서투른 건 당연한 거고 시키는 일만 하는 게 당연한 건데 내 욕심이 컸던 건지 더 잘하고 싶고 시키지 않아도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고 가끔씩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과 상황에 우울함에 빠져있을 때 저런 말을 들으니 더더욱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서 그만둬야겠다고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주.... 아니야 다다음주까지는 끝내고 그만둔다고 말해야지... 근데 인수인계도 해야 하니까 그만둔다고 말하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나...? 그럼 이번 주 금요일에 말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결전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낌새를 눈치챈 건지 아니면 저렇게 말을 해서 마음에 걸렸던 건지 카톡이 왔다.


"내일 아침에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 하자 ㅎㅎ 이 일 관련해서 얘끼를 하면 좋을 것 같아 서로 고민 좀 토론하게"


기회(?)가 왔다. 그냥 저 날 말해버리자. 협상(?)이 잘 끝나지 않으면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가야겠다. 어차피 그만둘 건데 그동안 서운했던 거는 다 말하고 그만둬야지라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전의 날 아침이 밝았다. 출근하기 전 카페에서 작가님을 만났다.


"일 힘들지..?"

"사실..." 일이 힘든 건 없었다. 그래서 더 속상했다.

"일이 힘든 건 없어요 그냥... 생각해보면 쉬운 일 이잖아요. 선배가 볼 수 있게 자료를 찾아서 복사해서 붙여주는 건데 그건 힘든 일이 아닌데.. 그날은 정말 자료가 없었어요..."

"근..."

"저는 솔직히 제가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선배가 제가 조사한 자료를 보고 대본을 쓰시니까 선배가 대본을 쓸 때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려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서 보내고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런 게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딱 딱 필요한 자료만 정리해서 보냈는데 그게 두 개밖에 없었던 거고 근데 선배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도 기분이 많이 상하더라고요"

선배는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30초가량 침묵의 시간이 흘렀을까? 선배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잘하고 있어... 사실 네가 준 자료를 받고 당황했어. 얘가 열심히 안 하는 애가 아닌데 왜 이렇게 줬지? 일이 하기 싫었나? 그런 애는 아닌데 왜 그렇게 줬지? 정말 자료가 없나? 하고 내가 찾아보니까 몇몇 개가 있더라고 그래서 나도 저렇게 말한 거였구"


사실 선배가 찾았다던 자료는 내가 찾았던 자료 중에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다른 주제 이야기 같아서 넣지 않았던 자료였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도움이 되고 싶어요... 월급루팡이 아니라 돈을 받고 일하는 만큼 도움이 되고 싶고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볼 때는 관련이 없는 자료 같아서 안 넣었던 거예요.. 귀찮았던 게 아니라 저는 선배가 조금이라 편하게 대본을 쓰시는 게 좋겠다 싶어서 그랬는데...". 


"네가 내 생각 해석 그런 줄은 몰랐어 그냥 귀찮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몰랐네... 근데 있지 네가 자료를 보내줘도 나는 그거만 보고하는 게 아니라 나도 추가적으로 공부를 해 그래서 네가 그냥 자료를 찾아서 주면 판단은 내가 할 테니까 그냥 보내줬으면 해 물론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야 내 생각을 해주는 건 고마워^^ 그런데 한눈에 봐도 양이 너무 적어서 어제 그렇게 말했던 거고^^"


오해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저는... 몰랐어요 그런 걸... 그리고 선배...."

그간 쌓여왔던 설움이 몰려왔다. 설움이라기 보단 내가 나 스스로를 의심했던 자괴감이 터졌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술도 먹지 않았고 다그치면서 날 혼낸 것도 아니었는데  당시 28살 눈물이 터졌다. 당황하는 선배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 늘 혼자 생각해왔던 것들을 드디어 입 밖으로 꺼냈다.


"사실 저는 작가 일을 처음 하잖아요. 그래서 시작할 때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고 시키지 않아도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꾸 선배한테 질문할 때마다 제가 너무 초라해 보이는 거예요 이런 간단한 일까지 물어보면서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잘하고 있나 라는 생각도 계속 들고 그 와중에 실수도 하고.... 그리고 가끔가다 선배가 '작가일 계속할 거야?'라고 물을 때마다 너는 일 잘 못하고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은데 계속할 거니?라고 물어보는 거 같아서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어요"


내가 울어서 당황을 하신 건지 아니면 저 말을 듣고 당황을 하신 건지 대답을 못하던 선배가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어... 그리고 내가 보기에 너는 정말 잘하고 있어 너는 작가 일을 처음 시작했잖아 그래서 물어보는 게 맞아 시키지도 않은 일을 네가 하면 네가 막내겠어? 서브하고 메인 하고 다 하겠지 그런 생각하지 마 너는 잘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작가일 계속할 거냐고 물어본 이유는.. 정말 순전히 궁금했던 거야 나도 지금 연차까지 오면서 수백 번 고민하는 일인데 처음 시작하는 너는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서 네가 작가 일을 계속할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물어본 건데 네가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네..."


커피를 한입 드시곤 말을 이어가셨다.


"네가 오히려 나보다 나은 점도 있어 스튜디오에서 녹화가 끝나고 뒷정리라던가 다른 일은 오히려 네가 나보다 더 잘하는 부분이 있어 그러니까 그런 생각 하지 않았으면 해 솔직히 나도 너한테 저렇게 말하고 하루 종일 너무 마음고생했어 내가 애를 너무 다그친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이더라고..."


나는 내가 일을 못해서 혼나는 건 상관이 없다. 일을 못해서 혼나면 그 일을 더 잘해서 다음부턴 그 일로 혼나지 않으면 되는 거고 그러면서 배워가는 거니까 다만 내가 속상했던 건 내가 일을 잘못해서 위에 서브작가들이 혼나는 게 싫었던 거다. 


"저는 저 때문에 선배들이 혼나는 게 싫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안 되는 거 같더라고요.."

"너 때문에 혼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못해서 확인을 못해서 그런 거야 네가 준걸 그대로 인용하지 않아 우리도 네가 준걸 토대로 추가하고 삭제하고 그렇게 하면서 하는 거니까 너 때문에 혼난다는 생각하지 마..."


듣고 보면 그랬다. 일 시작한 지 3개월도 안된 생신입 막내작가가 서브작가들 생각을 한다는 게 웃기는 상황이기도 했다.

"저는 배우는 입장이잖아요 선배 일적으로 저를 혼내는 건 상관없어요 차라리 혼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제가 그 일로 다시 실수 안 하고 저도 도움이 되니까 맨날 잘하고 있다고만 하니까... 그냥 하시는 소리 같고..."


"나는 네가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제 그런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하자^^ 지금도 열심히 잘하고 있으니까 오늘 일로 더 열심히 해보자"


그렇게 협상(?)이 끝났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초코파이 광고는 순전 거짓말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예전에 봤던 글에서 사람이 말하는 의도를 내 멋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저 그냥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거인데 저당 시 내가 자괴감에 빠져있어서 우울감에 빠져있어서 비꼰 것처럼 들렸나 보다. 그렇게 오해가 풀렸다. 회사로 들어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을 시작했을 때 카톡이 왔다.


"네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 같아서 미리 알려줄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오늘도 파이팅 하자^^"

'재민이 숙제'


참 고마운 선배였다. 친구들에게 카톡을 했다. 나.. 그냥 일 계속해보려고 잘하고 있다네...

냉전이 끝나고 점심식사 시간이 되고 작가님들과 밥을 먹으며  요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선배가 말했다

"재민이 아까 울었어요~"


하.... 울지 말걸...... 그래도 홀가분했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듣고 나니 일을 더 열심히 잘하고 싶단 생각과 함께 작가 일도 이 정도면.. 할만하네 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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