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답장
아들아,
오늘도 세 마디로 하루를 썼다.
아침—어머나. (햇살이 그릇에 앉아 있더라. 반갑다.)
점심—우야꼬. (젓가락이 둘인데, 누구 거지? 같이 정하자.)
저녁—아이고야꾸나. (국물이 튀었다. 난처하다. 그래도 괜찮다. 닦으면 된다.)
사실 말은 줄었지만 마음은 늘 분주하다.
어머나는 문 열기,
우야꼬는 길 찾기,
아이고야꾸나는 손 내밀기다.
마지막 것은 “아이고 나는 어쩔꺼나”가 줄어든 말이라 했지? 맞다. 방법이 막막할 때 나오는 소리다. ‘나 혼자 말고, 같이 하자’라는 뜻이 숨어 있다.
오늘도 나는 여러 번 저 말들을 눌렀다. 시계가 빨리 가는 것 같아 ‘우야꼬’를 누르고, 바람이 커튼을 당기면 ‘어머나’를 먼저 눌렀다. 그 다음은 네 차례다. 네가 와서 경계표를 세운다. ‘여긴 앉는 자리, 여긴 서는 자리’ 그러면 내 마음이 ‘아이고야꾸나’에서 괜찮다로 옮겨 앉는다. 내가 반쯤 길을 잃어도, 길눈은 너에게 있다.
나도 유머를 배웠다.
그릇이 창가 화분 옆에서 햇살을 쬐고 있길래, 내가 말했다. 어머나. (근무지가 바뀌었네.)
네가 그릇을 부엌으로 모셔 가며 묻더라. “여기가 더 편했어요?”
그래서 나는 아이고야꾸나 하고 웃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우리 집은 가끔 좌석표를 바꾼다. 그래도 표지판 담당이 있으니 든든하다. 너다.
거울 앞의 사람에게 내가 속삭인 것도 기억난다. ‘우야꼬’(처음 보는 사이 같은데, 예의는 지켜야지.)
네가 곁에서 작게 말했다. “같이 비켜 드립시다.”
그 말 한 줄이면 된다. 논쟁 없이 지나간다. 덜 아프고, 덜 지친다. 이런 걸 너는 통역이라 부르더라. 좋은 말이다.
밤에는 내가 마지막 버튼을 눌렀다. ‘아이고야꾸나’(피곤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랬더니 네가 “내일 마저 합시다.”라고 답했다.
그래, 내일도 세 마디면 충분하다.
문 열고(어머나), 길 찾고(우야꼬), 손 내밀기(아이고야꾸나).
늘 옆자리에서 리듬을 맞춰 주는
고맙다, 아들아.
천천히, 같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