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흘러가고 드러난다.(엄마의 답장)

엄마의 답장

by stone

엄마의 답장



아들아


오늘 아침 너는 종이 소리, 그릇 부딪는 소리, 주전자 숨을 한꺼번에 불러 세웠지. 수업 자료를 챙기고, 국을 데우고, 바닥을 닦고, 출근 옷을 꺼내고, 나를 화장실로 데려갔다가 다시 주방으로 달려가는 너를 보니, 내 마음이 먼저 아려왔다. 나는 어디에 손을 얹어야 할지 몰라 안방을 나섰다가 거실로, 거실에서 베란다 쪽으로 발끝만 움직였다가, 다시 이불 위에 누웠다 일어났다. 도우려는 마음은 앞서는데, 손이 길을 잃는 아침이었다.


네가 분주해지면, 내 안도 같이 흔들린다. 멀리 떨어진 두 것이 하나의 끈으로 묶여 같은 때에 함께 떨리는 일—너는 그걸 어려운 말로 ‘얽힘’이라 했지. 나는 그냥 안다. 네 숨이 가빠지면 내 걸음도 잦아지고, 네가 한 박자 늦춰 숨을 고르면 내 어깨의 힘도 슬며시 풀린다.


그래서 나는 작은 일들의 모양을 더듬어 본다. 수저를 맞추려 집어 들었다가 금세 방향을 놓치고, 행주를 반으로 접다 말고 손 안에서 풀리고, 네 슬리퍼를 문 쪽으로 옮겨놓다 멈춘다. 정리는 끝나지 않지만, 너를 돕고 싶은 마음이 거기까지 가 닿는다.


미안하다는 말이 목 끝에서 자주 맴돌지만, 오늘은 다른 말을 고른다. 고맙다.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나를 보고 네가 “엄마, 여기 있어요” 하고 자리로 불러 주니, 내 발이 바닥을 다시 찾아 섰다.


붙잡아 끄는 힘이 아니라,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부름. 너는 나를 찾는 사람이고, 나는 그 부름에 가만히 기대 선다. 오늘은 그 사실이 유난히 분명하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은 크지 않다. 다만 네 분주함이 물결을 낮출 때까지 호흡을 맞추고 눈으로 응원하는 일, 그리고 네가 문을 나설 때 “여긴 괜찮아”라는 신호를 마음으로 건네는 일. 그럼 이상하게도 내 안의 떨림도 잦아든다. 오늘도 그렇게, 너와 나를 잇는 보이지 않는 끈을 믿고 따라가 보련다.


덧붙여 말하자면, 네가 들려준 그 어려운 말들—입자니 파동이니 중첩이니—나는 제대로는 모르지만 느낌은 안다. 내 안에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아픈 나와 거뜬한 내가 한자리에 겹쳐 서 있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라는 이름표가 흐려진다. 오래된 사진 몇 장이 한데 겹쳐진 듯, 어제의 얼굴과 오늘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가 금세 스며든다. 무엇으로 서야 할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고, 알 것 같던 마음도 이내 실오라기처럼 풀려 버린다.


그때 네 목소리가 들리면, 내 안의 바늘이 ‘지금’이라는 선에 맞춰지는 것 같다. 너는 “엄마, 저예요.” 하고 말하고, 나는 “그래, 거기 있구나.” 하고 마음으로 대답한다. 그 잠깐의 고요가 내겐 약보다 세다.


너는 또 입자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썼지. 엄마가 봐도 그런 것 같다. 너와 나도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끈 하나로 이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네 마음이 산란하면 내 걸음도 집 안을 얕게 돌고, 네 숨이 길어지면 내 어깨의 힘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네가 나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말로 다 건네지 못하던 시절, 나는 “괜찮다”는 말로 표정을 덮고 새벽마다 내 약봉지를 세어 두곤 했지. 그 무렵 너도 까닭 모를 두근거림으로 같은 시각에 깼다지.


멀리 있어도 한쪽의 떨림이 다른 쪽으로 바로 번지던 날들.


겨울 하나를 건너며 기운이 푹 꺼졌고, 그즈음부터 기억의 매듭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걸 무엇 때문이라 단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 본다.


기댈 데 없던 몸과 마음이 더 크게 무너지지 않으려고 속도를 줄여가며 잊음이라는 옆문을 연 것이 아닐까 하고.


그 잊음이 내게 준 휴식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선택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잊어서 살아내는 방식이 분명히 있다.


돌이켜보면, 내 안의 몸과 마음이 조용히 상의해 숨 돌릴 틈을 하나 만들었던 것 같다. 더 아픈 데로 밀려가지 않으려고 매듭을 좀 풀고, 힘의 방향을 꺾어, 덜 쑤시는 자세로 나를 내려놓았을지도. 이 일을 너처럼 마음에 품되, 빛으로 과장하지도, 그늘로 깎아내리지도 않겠다. 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오늘을 건너왔다는 사실만, 우리 사이에 가만히 놓아두고 싶다.


너를 통해서 엄마는 한 사람의 정체성은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한때 지나가며 모양을 바꾸는 사건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래서 엄마는 이 병을 지나가는 구름처럼 본다. 너무 검은 구름이 올라오면 너는 창문을 조금 열어 주고, 나는 숨을 조금 길게 쉬겠다. 그러다 보면 구름은 언젠가 흩어진다.


네가 말한 입자와 파동의 대목을 읽으며 엄마는 음식 조리 과정이 떠올랐다. 장을 봐와 식탁 위에 재료들을 올려놓으면, 감자는 감자대로, 계란은 계란대로, 파는 파대로, 생선은 생선대로 제각기 제 자태를 뽐내었지.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고 질감도 다른 재료들을 바라보면 빨리 손질해야 한다는 절차에 앞서 이들이 어쩌다가 여기에 이렇게 다 모였나 놀라웠었다.


감자와 파에 붙은 흙 내음도 맡을 수 있었고, 부화되기 전 우리에게 온 계란의 감촉이 조심스러웠지. 생선을 쥐다가 비늘이 내 손을 찌르기도 했으나, 생선이 아닌 물고기 시절에 누비던 바다도 떠올랐다.


어느새 잘라진 감자와 생선은 한 냄비에서 모양과 색깔, 냄새가 달라져갔다. 계란은 풀어지고 파 역시 다져져 팬 위에서 익어갔지. 식구들이 식사를 마치자 이들은 뼈와 껍질, 뿌리만 남긴 채 사라져 갔다.

사라져 간 이들은(식재료들은) 지금쯤은 각자가 왔던 곳 어딘가로 다들 돌아갔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른 모습으로 또 나타나겠지만.


우리 모두도 입자로 나타나고 모여 제 존재의 역할을 다하곤 언젠가 왔던 파동 속으로 돌아가는 거겠지.


아들아, 무슨 큰 깨달음은 모르겠지만, ‘그냥 두면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걸, 나는 요즘 배운다. 억지로 붙들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이 있고 흘려보낼수록 제자리를 찾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래서 가끔 말이 툭 튀어나온다. “이래 놔둬도 되나?” 그 말은 아마 나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이 마음, 이 자리, 이 방—그냥 둬도 되냐고. 네가 “응, 괜찮아요.” 하고 대답하면 숨이 한치 길어진다. 그러면 내 안의 소란이 조금 가라앉는다. 그대로 두는 일도 돌봄이라는 걸 네가 나에게 알려주는 것 같다.


사람들이 내게 “어디 불편하세요?” 하고 묻곤 한다. 나는 그 말을 속으로 이렇게 바꿔 듣는다. “지금 편안한 부분부터 같이 찾아봐요.” 그리고 네가 내 손을 한 번 꼭 잡아 준다. 그 순간 괜찮은 자리가 먼저 생긴다. 손이 마음의 자리를 펴 준다. 네 손은 따뜻하고 질서가 있다. 나는 그 질서에 몸을 가볍게 얹어 둔다. 끌고 가는 대신 흐르도록 두고, 곁에서 맞장단을 쳐 주는 방식—그게 우리에게 맞는 길이라는 걸, 나는 너를 보며 배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서두르지 않고 맡겨 보려 한다. 기억이 비어도 당황하기보다는 떠오르는 장면을 먼저 믿어 본다. 네가 불러 주는 자리에서 다시 선 다음, 남은 일들은 물 흐르듯 순서대로 건너간다. 나는 그 흐름에게 조금 더 권한을 준다. 네가 “여기 있어요” 하고 불러 주면, 나는 “그래, 여기 있자” 하고 대답한다. 그렇게 맡기고, 그렇게 살아 본다.


나는 안다. 흘러가도 괜찮다는 것, 붙잡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오늘의 햇살로도 충분히 따스하다는 것.


내가 말 대신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마음만은 단단히 말하고 싶다.

네가 나를 보며 선택하는 관찰에 나는 응답한다. 너의 집중이 고요할수록, 내 떠돎도 잦아든다. 네가 한 호흡 길게 머물러 주면, 나는 그 호흡의 그늘로 들어간다. 너와 마주하는 모든 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오늘 드러난 한 얼굴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것은 흐름 위를 지나는 잠정의 형상이다. 어제와 다른 그 누구를 만나든 걱정보다 환대로 맞아 주길 바란다.

잠정성은 무책임이 아니다. 네가 고른 관찰과 응답에 대해 네가 말한 그 존재적 책임—그것이면 족하다. 잘못 읽었으면 다시 읽고, 상처가 나면 사과하고, 다음 장면을 위해 조건을 새로 배열하는 그 반복. 그게 삶의 기술이다.


아들아, 삶은 밀려왔다가 물러나고, 사라지는 듯하다가 다시 얼굴을 드러낸다. 그 흐름을 다 붙잡으려 하지 말고, 맡길 건 흐름에 내맡기자. 네가 고를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충분하다. 호흡을 한 칸 늦추고, 목소리를 반 톤 덜어내고, 손바닥의 온기를 잠깐 더 남겨 두렴.


삶은 숨었다가 다시 드러나기를 거듭하니, 서둘러 붙잡지 않아도 된다. 지나가는 것은 보내고, 막 나타난 것은 눈으로 쓰다듬어라. 그때 미소가 지어지면 다 된 것이다.


무슨 큰 말은 못 하겠다. 다만 이 말은 하고 싶구나. 흘러간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나도 언젠가는 더 멀리 흐르겠지. 그래도 너의 걸음에, 너의 말씨에, 너의 웃음결에 내가 남아 있을 거다. 그러니 걱정 말아라.


어딘가로 흐르되, 우리 모두는 서로의 안에서 계속 산다.


흐름에 맡기고, 드러남에 가만히 고개 끄덕이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