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택굿>과 효(孝) 이데올로기
"자식은 죽으면 또다시 낳으면 되지만, 부모는 한 번 돌아가시면 아주 영영 돌아가십니다."
김복순 구연, 임석재‧장주근 조사, <안택굿(安宅)>(1965)
지성이 지극하면 지신(地神)도 감천(感天)한다는 말이 있다. 정성이 지극하면 죽은 인간도 살아나고 앓던 인간도 낫고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되는 법이다.
옛날 옛 시절에 '지신' 할아버지, 그의 아들 '정신'이와 손자 '감천'이가 살고 있었는데, 감천이는 오대 독자였다. 감천이가 6~7세가 되었을 때 집에 독서당을 지어놓고 공부를 하다가, 안헤산 금상절에 3년 동안 글공부를 하러 떠났다.
그때 감천이의 할아버지가 태산 같은 병에 걸려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감천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점쟁이 '대산천' 댁에 가서 병을 고칠 방법을 물었다. 대산천 댁은 삼 년 묵은 닭의 피와 두개골을 구해서 약으로 쓰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구하지 못하면 오대 독자 외아들을 죽여서 약으로 대신 쓰라고 했다. 감천이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후 너무 끔찍한 마음이 들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감천이의 어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채근하자 그때서야 감천이의 아버지는 감천이를 약으로 써야 한다는 말을 했다. 감천이의 어머니는 자식이 죽으면 다시 낳으면 되지만, 부모가 죽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감천이를 약으로 쓰자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금상절로 길을 떠났다.
감천이의 어머니가 금상절에 도착했다. 감천이의 글 선생은 생불 부처 성인(聖人)님이었다. 옥황상제는 감천이의 어머니가 참 효부(孝婦)라고 하면서, 성인님에게 감천이의 모습을 한 인삼을 대신 내려보내라고 지시했다. 성인님은 옥황상제의 분부대로 인삼을 감천의 모습으로 바꾸고 감천의 옷을 입혀서 감천이의 어머니에게 보냈다.
집에 도착해서 감천이의 부모는 숯 위에서 약탕물을 끓였다. 감천이의 어머니는 감천이에게 3년 동안 글공부를 하느라고 몸이 깨끗하지 않으니 목욕을 하자고 했다. 그리고 감천이를 들어서 끓는 약탕물에다가 집어넣었다. 그 약을 다려서 감천이의 할아버지에게 올리니, 할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날이 지나서 감천이의 할아버지는 크게 화를 냈다. 글공부를 떠난 감천이가 자기가 병에 걸려 아팠는데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 대답을 못하던 감천이의 부모는 수심에 휩싸여 전전긍긍하다가 눈이 어두워져서 장님이 되었다.
한편, 글공부를 마친 감천이는 세상의 지식에 통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할아버지에게 문안을 올렸지만, 할아버지는 괘씸해하며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감천이는 이어서 부모에게 문안을 올렸는데, 부모는 죽은 아들이 귀신이 되어 돌아왔다며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감천이는 그런 것이 아니라며, 옥황상제의 명령으로 자기 대신 인삼을 내려보냈던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제야 감천이의 부모는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
감천이가 이 사실을 나라에 고하자, 나라에서는 감천이의 어머니에게 효부문(孝婦門)을, 아버지에게는 효자문(孝子門)을 내리고 많은 쌀과 돈도 챙겨주었다. 그때부터 열녀문(烈女門), 효부문, 효자문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렇게 하여 집집마다 '성주 안택 받기' 마련하는 법이 생겼고, 감천이 할아버지는 지신(地神)이, 감천이 어머니는 성주신(城主神, 成造神)이, 감천이 아버지는 안택신(安宅神)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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