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본풀이>와 폭력의 전략
"아이고 어머니, 콩이 다 까맣게 타고 있으니 손으로라도 저으세요."
원강아미가 타고 있는 콩을 손으로 저으려고 하니 한락궁이가 원강아미의 손을 꾹 누르면서
"어머니, 이래도 바른말을 못 합니까? 우리 아버지가 간 곳을 알려주세요."
"이 손 놓아라, 가르쳐주마."
손을 놓자 어머니가 말을 하되,
"너의 아버지는 서천꽃밭 꽃감관 꽃성인이 되었다."
"어머니, 나는 아버지를 찾아갈 것인데, 어머니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간 곳을 남한테 이르지 마세요."
안사인 구연, 현용준 조사, <이공본풀이>(1968?)
씨 멸족 시키는 수레멸망악심꽃의 근원을 알아보자.
옛날에 가난한 '짐진국'과 천하거부인 '임진국'이 살고 있었다. 두 집 모두 자식이 없어서 영험한 절에 들어가 기자치성을 올렸다. 그 결과 짐진국은 아들 '사라도령'을 낳았고, 임진국은 딸 '원강아미'를 낳았다. 짐진국과 임진국은 아이들이 장성하면 결혼을 시켜 사돈을 맺자고 약속했다.
사라도령과 원강아미는 15살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20살이 되었을 때 원강아미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명이 내려왔다. 하늘의 서천꽃밭을 지키는 꽃감관으로 사라도령을 데려가겠다는 것이었다. 원강아미는 사라도령과 함께 서천꽃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원강아미는 홀몸도 아니었기에 서천꽃밭으로 가던 중 발병이 나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닭소리와 함께 '제인 장자'의 집을 발견하게 된다. 원강아미는 사라도령에게 자신을 제인 장자의 종으로 팔고 혼자 서천꽃밭으로 가라고 말했다. 제인 장자는 원강아미를 종으로 샀고, 사라도령은 원강아미에게 증표로 ‘얼레빗’ 한 조각을 주었다.
사라도령이 서천꽃밭으로 떠나자, 제인 장자는 원강아미에게 동침을 요구했다. 원강아미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동침 요구를 거부했다. 원강아미가 아들 '한락궁이'를 낳자, 제인 장자의 동침 요구는 더욱 심해졌다. 계속 동침을 거부하는 원강아미가 괘씸했던 제인 장자는 원강아미와 한락궁이에게 혹독한 벌역(罰役)을 시켰다.
한락궁이가 15살이 되었을 때, 원강아미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 원강아미는 제인 장자가 아버지라고 말했지만 한락궁이는 믿지 않았다. 어느 날 한락궁이는 원강아미에게 콩을 볶아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갑자기 원강아미의 손을 뜨거운 솥에 누르면서 다시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 원강아미는 불에 지져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서천꽃밭 꽃감관 사라도령이 아버지라고 대답했다. 한락궁이는 서천꽃밭으로 떠날 것을 결심하며, 원강아미에게 자신이 간 곳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겁박했다. 원강아미는 메밀 범벅 세 덩이를 한락궁이에게 주었고, 한락궁이는 길을 떠났다.
제인 장자는 한락궁이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천년둥이’와 ‘만년둥이’에게 한락궁이를 잡아오라고 시켰다. 한락궁이는 원강아미가 만들어준 메밀 범벅을 던져서 천년둥이와 만년둥이를 따돌렸다. 한락궁이를 잡지 못한 제인 장자는 화가 나서 원강아미를 갈가리 찢어 죽이고 들판에 뿌렸다.
한락궁이가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에 무릎에 찬 물, 허리에 찬 물, 목까지 찬 물을 건너서 서천꽃밭에 다다랐다. 한락궁이는 서천꽃밭에서 사라도령에게 증표인 얼레빗을 보여주며 아들임을 증명했다. 사라도령은 한락궁이가 건넌 물이 각각 초대김(첫 번째 다짐), 이대김(두 번째 다짐), 삼대김(세 번째 다짐)을 의미한다고 말해주며, 원강아미의 죽음을 알려준다. 사라도령은 한락궁이에게 ‘수레멸망악심꽃’으로 복수를 하고, ‘도환생꽃’으로 어머니를 살려서 데려오라고 명한다.
한락궁이는 제인 장자의 생일잔치에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제인 장자의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한락궁이는 웃음꽃, 싸움꽃, 수레멸망악심꽃으로 제인 장자와 그의 일가친척을 몰살시키고, 도환생꽃으로 어머니를 살려 서천꽃밭으로 돌아간다.
한락궁이는 사라도령에게 꽃감관의 지위를 물려받고, 원강아미는 저승어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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