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아빠는 문학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빠는 꼭 명절이면 서울의 대형 서점에 어린 나와 언니를 데려가곤 했다. 그맘때 우리는 춘천에서 살고 있었기에, 어린 나는 춘천의 서점과는 차원이 다른 서울의 서점에 압도되었다. 그렇게 엄청 큰 서점에서 한참을 고르고 골라 책 몇 권을 사들고 할머니 댁에 갔다. 그리곤 두툼한 솜이불 위에 엎드려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책을 읽었다.
아빠와 엄마 역시 몇 권의 책을 함께 골랐으나, 정작 할머니 댁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엄마는 잡채를, 전을, 소고기 뭇국을, 고사리를 무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아빠는 할머니의 말동무를, 엄마의 심부름을, 몰려온 조카들과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어렸을 적 우리 집 거실 한 편은 책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친구가 놀러 왔을 때 빼곡히 채워진 책장은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웠다.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었건만 수많은 책들은 어린 나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까. 책을 읽기보다는 모으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 책장에는 태백산맥, 아리랑, 올해의 작가상 수상집들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엄마 아빠가 언제 읽었는지 모를 책들은 햇빛에 바래질 만큼, 오랜 시간 나와 함께 있었다.
유년시절이 지나고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우리 가족은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아빠의 직업은 직장인, 수험생을 거쳐 끝내 자격증을 가진 자영업자로 바뀌었다. 짧지 않은 수험생 시절이 끝난 아빠는 자신의 이름으로 사무실을 내고 나름 그럴듯한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빠가 무너지는 신촌의 고시원에서 극적으로 탈출하여 전문직으로 제2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을 때, 그의 둘째 딸은 인생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딱히 교대를 가야지 생각이 없었던 나는 주위의 등살에 교대 하나를 끼워 맞추기 식으로 지원했는데 슬프게도 오직 교대만을 합격했다. 떠밀리듯 입학한 대학시절은 따분하고 따분하고 따분했다. 매일이 심심했던 나는 매일같이 학교 도서관에 드나들며 책을 읽었다.
그 시절부터 나에겐 꿈이 하나 있었으니 ‘세상에 태어났으니 내 이름의 책 한 권은 쓰고 죽자.’
꽤 오래 간직해온 나만의 낭만적인 꿈.
얼마 전, 추석 명절 가족들이 모두 모였을 때였다. 아빠는 우리에게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의아했다. ‘나에게 편지 한번 써 준 적 없는 아빠가 글이라니. 글을 쓰는 일이라면 아빠보다 엄마 쪽이 좀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이제 곧 일흔을 앞둔 아빠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글을 쓰고 싶다 말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틈틈이 적어둔 몇 편의 글을 내게 보여줬다.
“네가 책의 감수를 좀 맡아주면 좋겠어.”
그때였다. 내 머릿속이 빤짝인 건.
‘이거다! 이건 나와 아빠의 책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