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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수 Apr 19. 2023

'마크툽'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다.

"우연의 일치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p123)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연금술사


수지는 중학교에 가서 반장도 부반장도 안 했다. '초등학교 때 많이 힘들었었구나?' 생각했다. 

수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수지야, 2학년 부회장 선거 나가봐. 언니가 선거홍보 도와줄게"

"3학년이 해도 돼?"

"안될 건 뭐야? 같은 학교 학생인데."

"그래도. 그건 별로야. 할 거면 내 친구들이랑 해야지"

"그래. 그러면 네 친구들이랑 해. 언니는 내 친구들한테 말해둘게. 언니 친구 많은 거 알지?"


원 플러스 원

수지는 2학년 부회장에 당선됐다. 

나는 학부모회 부회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선거를 통해 공정하게 뽑혔고, 엄마들은 당연한 듯 손을 들었다.

중학교 학부모회는 3학년 회장과부회장, 2학년 부회장, 1학년 감사 이렇게 4명으로 구성된다.

4명의 합이 잘 맞았다. 1년 동안 학부모 독서회, 학부모 한지공예, 아이들 학예회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학부모회 4명이 다 운영위원이라 한 달에 1~2번씩 만났다. 

 회장은 늘 먹을 것을 준비해 왔다. 쿠키나 음료는 기본이었다. 여름에는 화채도 만들어 왔다.  

물론 학기 초에 운영비를 걷기는 했지만, 매번 장보고 준비해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다. 리더의 그릇은 저 정도는 돼야 하는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학년말 

수지는 "회장에 출마할까? 친구들이 내가 하는 줄 알아"라고 말하며 내 의견을 물어봤다.

"엄마는 이번에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언니 고2 되는데 언니 케어 해야 할 것 같아"

"알겠어..."

며칠 뒤 

"엄마, 후보가 한 명도 없데. 담임 선생님이 엄마랑 다시 상의해 보라고 하시는데"

"넌, 하고 싶어? 이번에도 초등학교 때처럼 단독 후보잖아"

"지금은 좀 다르지, 2학년 부회장이 거의 회장 하니까 애들이나 선생님도 자꾸 물어보고, 나도 하고 싶어"

"음.  후보 끝까지 안 나오면 어떻게 해?"

"끝까지 안 나오면 내년 3월 학생회에서 3학년 반장들 후보로 투표한데"

"엄마도 좀 더 생각해 볼게"


"나겸이 엄마, 이번에 나겸이 2학년 부회장 나가지?"

"아니요. 우리 1월에 이사 가요"

"아. 진짜? 그럼 2학년에서 누가 나오려나?"

"글쎄요. 아직 후보가 없는 것 같던데요. 수지는 나가요?"

"나는 반대하는데. 수지가 하고 싶다 해서 고민 중이야. 나겸이 엄마랑 같이 하면 해볼까 했는데  안 되겠네. 나 혼자 어떻게 해? 애가 하고 싶다 해야 엄마도 도와주고 싶지. 그냥 학교에서 시키면 엄마들도 안 하려고 할 텐데. 아무튼 전학 간다 하니 서운하네. 그전에 넷이 만나 송별회 해요. 그나저나 4명 중에 나만 남네"

"미안해요"

"나겸이 엄마가 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섭섭했다. 



결국 수지는 후보등록을 포기했고. 마지막 날 지원한 1명이 회장이 됐다. 

1~2학년 동안 학급 임원도 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인물이었다. 

3월 반장 선거가 있는 날 아침 "엄마, 나 반장 지원할 수도 있어"


"어머니, 수지가 부회장이 됐어요."

"아.... 

네...."

"올해도 종종 뵙겠네요"

"네, 선생님"

반장 중에서 부회장을 선출한 모양이다. 

'이럴 거면 그냥 회장 할 걸' 수지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 나 부회장 됐어. 괜찮아?" 수지의 말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학교에서도 '엄마가 괜찮을까?' 이런 표정이었구나.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전화하신 거구나.

미안했다. 

기뻐해야 할 일이고, 축하받아야 할 일인데 미안해하고 걱정해야 하는 일로 만들었구나.


민주는 학생회 경험이 없다며 수지에게 일일이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다. 당연히 졸업식도 없었다.





수지는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늘 언니가 다니는 곳으로 진학을 했다. 

그래서 입학하기 전부터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1학년 첫 주. 선생님들은 의례 "2학년이나 3학년에 언니 있는 사람?" 물어보셨다.

수지와 다른 친구 1명이 손을 들었다.

"아. 네가 수아 동생이구나? 안 그래도 수아가 동생 입학한다고 찾아보라 하던데. 별로 안 닮은 것 같은데"

반장 선거가 있기 전까지 수지는 '수아동생'으로 불렸다.

반장이 되고 난 뒤에는 '2반 반장'으로 불렸다.

"반장, 어딨 니? 어 그래 2반 반장아~"

격주에 한번 등교하면서 마스크까지 끼고 있으니 선생님들께서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외우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수지는 고등학교에 와서는 줄곧 반장을 했다.

3학년 반장이 되고 일주일 뒤, 1학년때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안녕하세요. 3학년 주임입니다. 수지 1학년때 담임이요"

"네. 알죠 선생님. 어쩐 일 이세요?"

"어머니께 어려운 부탁드리려고요"

"예? 선생님께서 저한테 무슨 부탁이 있으신데요?"

"어머니, 학부모회 회장님 맡아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제가요? 회장이나, 부회장 엄마 있잖아요. 주임 선생님반 반장 어머니도 있고..." 

"그렇죠... 다들 직장 다니셔서 안된다 하시네요. 너무 강경하셔서 두 번 전화를 못하겠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어머님께 전화드린 겁니다. 어머니 마저 거절하시면 제가 더 이상 전화드릴 학부모님이 없어요"

"그런데 저는 운영위원인데 학부모회까지 겸직할 수 있나요?"

"아... 제가 알아보고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어머니, 가능하데요. 회장 맡아주시면 제가 웬만한 건 다 못한다 하겠습니다."

"아무리 친절한 거절이라도,  여러 번 당하면 자괴감 드는데. 그걸 알면서 저까지 또 거절을 못하겠네요.

 제 일하는 시간이랑 겹치는 건 못해요. 그건 미리 말씀드릴게요"

"당연하죠. 제가 진짜 웬만한 건 다 거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나는 학부모회 회장이 되었다.

학부모 간담회 날. 수지는 다른 반 반장들과 학교 안내를 하고 있었다.

"엄마~~" 

아이들은 학교에서 엄마를 만나면 더 반가운가 보다. 

한 동안 듣지 못했던 우리 둘째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들었다. "나 먼저 갈게. 나중에 집에서 봐용"


학부모 무리 속에 앉아 교장선생님 인사말씀을 듣고 있었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학부모 회장님도 계십니다. 김숙현 학부모 회장님. 기꺼이 회장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내가 지원한 거라 말하라는 뜻이구나' 

역시 학교라는 조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곳이었어.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으니 떨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머릿속이 새 하앴다.

머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입으로 말하고 있었다.


예상시간보다 30분이나 지나서 전체 간담회가 끝났다. 

담임선생님과의 시간을 위해 각 반으로 이동하는데 복도에 수지가 있었다. 

"어? 아직 안 갔네?"

"교감선생님께서 3학년이 들으면 좋은 내용이라고 듣고 가라 하셔서 다 같이 강당으로 끌려왔어"

"시간이 늦어져서 담임선생님과의 시간은 금방 마치실 것 같은데. 기다렸다가 같이 갈래?"

"응. 1층에 있을게"


정말 10~15분 만에 끝났다.

복도를 지나 1층 공동 현관까지 가는데 서너 명의 아이들이 내 앞으로 불쑥 들어오더니 배꼽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수지 친구 **이예요"

"그래. 안녕"


"오는데 애들이 나한테 인사를 하더라. 처음 강당에 갈 땐 사무적인 인사였는데, 지금은 얼굴 보고 눈 맞추고 찐으로 인사하는 거 있지"

"애들이 나한테도 카톡 보냈어"

너네 엄마 회장이야?
지금 단상에 올라가서 말하는 사람? 너네 엄마?
오~ 싸인 부탁할게 ^^


"나 유명인사 된 것 같아 ㅋ"

"내가 학생회장도 아닌데 엄마가 학부모회 장한다 하니까 애들이 더 멋져 보인데"

"넌 어때? 회장 안 나간 거 후회 돼?"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지금은 별로"

"엄마 소감 말하는 거 들었어?"

"응"

"어땠어? 엄마는 무슨 말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

"괜찮았어"

"손이랑 다리랑 막 떨었는데 티 났어"

"글쎄. 모르겠던데. 그리고 좀 떨면 어때"


10시가 훌쩍 넘는 시간이었다. 

벚꽃이 만개해서일까? 

수지랑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걸어서일까?

집에 오는 길이 수면등을 켜 놓은 듯. 은은하고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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