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고유성

한 끗 차이로 만들어지는 세계들

by 김남정

하나의 세계는 얼마나 많은 허구를 품을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지금의 삶 역시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한 결과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전혀 다른 하루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이란, 가장 그럴듯하게 남아 있는 하나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러 삶을 꿈꿀 수는 있지만, 그 모든 삶을 동시에 살 수는 없다.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다른 가능성들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난다. 직장을 선택한 삶, 전혀 다른 길로 떠난 삶, 누군가와 함께 했을 삶. 그 모든 세계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함께 펼쳐질 수는 없다. 선택은 늘 세계를 좁힌다. 대신 삶을 구체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어떤 것을 규정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말해지지 않은 나는 접힌다. 규정은 편리하지만,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줄인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는 매일 자신을 설명하며 살아간다. 다만 그 설명을 너무 일찍, 너무 단단하게 굳혀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래서 결국 나는, 다시 이야기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내가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끼는 이야기, 남들이 좋아할지, 의미가 있을지는 그다음 문제다. 처음부터 잘 쓰려 하가나, 평가를 염두에 두면 이야기는 금세 굳어진다. 반대로 나를 오래 붙잡는 이야기는 쉽게 놓이지 않는다. 창작은 설득이 아니라, 끌림에서 시작된다.


고유성은 흔히 대단한 것으로 오해된다. 독창적이어야 하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어야 한다고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고유성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 생긴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어디에 시선이 머무는지, 같은 문장을 읽고도 어떤 문장이 오래 남는지. 고유성은 거창한 시선이 아니라, 한 끗 차이다. 그리고 그 한 끗은 누구에게나 있다.


창작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차이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남과 비교하며 부족함을 확인하는 대신, 나에게 남아 있는 감각을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 그 감각은 대개 분명하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창작은 종종 고통스럽다.


자기 바닥으로 내려가는 과정은 늘 쉽지 않다. 겉으로 보기 좋은 이야기보다, 스스로에게 불편한 이야기가 더 오래 남는다. 왜 이 이야기를 굳이 해야 하는지, 왜 이 장면에서 멈추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 질문 앞에서 이야기는 힘을 얻는다. 고통스럽게 침잠해서 건져 올린 문장만이, 나를 속이지 않는다.


사람은 본래 일관성이 없는 존재다. 우리는 하나의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유동적인 자아성을 지닌다. 어떤 날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어떤 날의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 모순은 결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에 가깝다. 문제는 변하는 자신을 부정할 때 생긴다.


전시를 좋아하는 사람,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묘한 힘이 느껴진다. 결과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을 반복해 온 시간 때문이다.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계속해온 일들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결을 만든다. 고유성은 그렇게 축적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밀도처럼.


나만의 고유성은 이미 완성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하고, 포기하고, 돌아보고, 이야기를 만들며 조금씩 만들어진다. 수많은 가능성을 접어 두고 남은 이 세계가 지금의 나다. 그리고 그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이야기로 남길 것인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만의 고유성을 나는 어떻게 매일의 삶과 글 속에서 계속 살아 있게 할 수 있을까.


#고유성 #창작 #자아 #글쓰기

이전 12화핀란드 사람들은 이렇게 '집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