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대하여
김환기의 그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서머싯 몸의 문장에는 종종 달이 등장한다. 시대도, 국적도, 장르도 다른 이들이 왜 공통으로 달을 불러왔을까. 해가 아닌 달을 선택했다는 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빛나는 대상은 언제나 해였을 텐데, 이들은 어째서 밤하늘의 달을 이야기 속에 두었을까.
내가 생각한 첫 번째 이유는 시간이다. 낮은 해야 할 일로 가득한 시간이다. 정해진 일정과 역할, 책임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반면 밤은 다르다. 특히 잠들기 직전의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 된다. 그 시간에 떠 있는 달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아마 그들은 바로 그 고요를 사랑했을 것이다.
달은 서두르지 않는다. 낮처럼 성과를 요구하지 않고, 밤을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창작자에게 그런 시간은 귀하다.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판단이 잠시 멈추는 시간이다. 달이 떠 있는 밤은 생각이 가장 느슨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김환기의 달은 정적 속에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은 인물 곁을 조용히 지나가며, 서머싯 몸의 달은 인간의 고독을 말없이 비춘다.
두 번째로 떠오른 이유는 빛의 방식이다. 해는 스스로 빛난다. 반면 달은 빛을 반사한다. 이미 존재하는 빛을 받아, 자신의 표정으로 보여준다. 이 태도는 창작의 방식과 닮아 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있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자기만의 언어로 다시 보여주는 일. 달은 늘 같은 빛을 받지만, 결코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독창성을 새로움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많은 창작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발견한다. 달처럼 말이다. 받아들이되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반사하되 동일하지 않게. 그 차이가 곧 고유성이 된다.
달이 주는 또 하나의 위로는 변화다. 달은 매일 모양이 다르다. 차오르기도 하고, 이지러지기도 한다. 어느 날은 거의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은 밤하늘을 가득 채운다. 우리는 그런 달을 보며 불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달의 시간이라고 받아들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1초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만 엄격하다. 어제의 나와 다르면 불안해하고, 예전의 열정이 사라진 것 같으면 자신을 의심한다. 달은 말해준다. 변해도 괜찮다고. 지금의 모습도 충분하다고. 꼭 가득 차 있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아마 김환기와 하루키, 서머싯 몸은 달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빛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완성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밤의 가치. 달은 늘 조용한 편에 서 있다.
고유성을 계속 살아 있게 하는 일은, 어쩌면 해처럼 매일 빛나는 것이 아니라 달처럼 리듬을 갖는 일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가득 차고, 때로는 거의 보이지 않아도, 다시 돌아올 것을 아는 상태. 창작도 삶도 그런 순환 속에 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달이 있든 없든, 그 시간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나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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