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집이라는 보석상자 안에서
오늘은 1월 1일이다. 달력이 바뀌었고, 숫자가 새로워졌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뜬 풍경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창밖은 추운 겨울이고, 집 안은 조용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하루를 특별한 날이라고 부른다.
돌아보면 예전의 나는 1월 1일이 오면 마음이 먼저 분주해졌다.
"올해는 뭘 해야 하지?"
"작년에는 도대체 뭘 한 거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미 뒤처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새해라는 말이 기대보다 부담으로 다가오던 때였다.
요즘의 나는 조금 다르다. 새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으로 책들이 떠오른다. 지난 한 해 동안 읽었던 책들, 표지가 닳도록 다시 펼쳐보았던 페이지들, 밑줄이 겹겹이 남아 있는 문장들.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지만, 그 시긴들 속에서 나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나답게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1월 1일 아침에 문득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어쩌면 '나다움'은 새해가 되었다고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온 시간 속에 흩어져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나는 아직도 진짜 나다운 모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 답을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조금씩 확인해 왔다. 분명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날도 많았지만, 그 질문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내가 한 해를 살아낸 방식이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르 코르뷔지에는 "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1월 1일의 아침과 유난히 잘 어울린다. 집은 새해를 맞이하는 가장 조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나는 나를 꾸미지 않아도 된다. 새해 목표를 적지 않아도 되고, 어제보다 더 나아진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 읽고, 쓰고, 살림을 하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집은 그런 나를 그대로 받아준다. 나를 안전하게 보관해 주는 공간에 가깝다.
오늘이라는 날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미 살아온 시간을 잠시 바라보게 한다. 나는 지난 시간 동안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를 외면하지도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하루는 가볍지 않다.
1월 1일은 새로워야 할 이유보다 그냥 오늘이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지만, 그래서 더 차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이다. 오늘 나는 새해를 맞이하기보다, 오늘을 맞이한다. 집이라는 보석상자 안에서 이미 살아온 나로서 또 하루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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