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돌보는 시간이 인사 한마디를 돌아보게 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먼저 가라앉고 말은 없어진다. 특별히 조용히 하라는 말이 없는데도 그렇다. 들숨과 날숨을 고르라는 선생님의 절제된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면, 내 몸은 생각보다 먼저 반응한다. 이곳에 오면 나는 늘 호흡부터 정리하게 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몸의 모든 근육은 일제히 호흡을 따른다.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이곳에서는 늘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일까. 이 교실에 들어오면 나는 늘 조금 더 차분해진다.
지금의 하루는 이렇게 몸을 깨우는 일로 시작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2019년 12월, 작은딸의 권유로 함께 시작한 이 수업은 그저 '몸에 좋다더라'는 말에 기대어 선택한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자주 피로했고, 근력은커녕 근육의 쓰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몸은 늘 나를 지탱해 주지 않았고 늘 힘든 하루였다.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달라진 건 체중보다 몸의 쓰임이었다. 특히 필라테스 기구와 매트 수업을 병행하면서 그 변화를 더 또렷이 느낀다. 예전에는 힘을 주라는 말이 곧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에 빼야 하는지 몸이 안다. 불필요한 긴장을 내려놓을수록 오히려 중심은 단단해진다는 걸 몸이 먼저 배웠다.
근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그보다 더 반가운 건 일상에서의 변화다. 물건을 들 때 허리를 먼저 세우게 되고,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도 몸은 가볍다. 몸을 함부로 쓰지 않게 되었다는 감각을 느낀다. 그것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의 시작은 몸 상태에 달려 있었다.
오전 9시 수업이 끝나고 나오며 나는 늘 마음을 담은 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습관처럼 말하려다, 나도 모르게 "수고하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내뱉은 말을 삼켜버릴 수도 없다는 걸 알기에, 그 짧은 인사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 인사가 반갑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모르게 위에서 아래로 건네는 말 같기도 하고, 계속 애쓰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이야기를 점심을 먹으며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냥 대충 살라고 말했다. 그렇게 정해 놓고 살면 어렵다고 하면서 선생님은 그런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그 말에 미소가 지어진 점심이었다.
'감사합니다'와 '수고하세요'. 비슷해 보이지만 결이 다르다. '감사합니다'는 내가 받은 것에 대한 응답이고, '수고하세요'는 상대방에게 남아 있는 노동을 전제한다. 이미 수업을 마친 사람에게 건넨 '수고하세요'는, 어딘가 어긋난 말처럼 느껴졌다.
왜 그 말이 그렇게 마음에 걸렸을까. 아마도 몸은 호흡에 맞춰 세심하게 다루면서, 말은 그만큼 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은 지금 여기에 있는데, 말은 습관에 기대어 앞질러 나간 셈이다. 형식적인 "수고하세요" 대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운동은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일이 아니다. 호흡과 움직임, 집중과 절제가 함께 작동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동작이 무너지고, 동작이 무너지면 마음도 함께 산만해진다. 그래서 이 시간은 늘 나를 현재로 데려온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게 만든다.
문득 10년 후의 나를 떠올려본다. 아마 지금보다 더 느리게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약해진 몸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아는 몸이었으면 좋겠다. 필요할 때 힘을 쓰고, 쉴 때는 제대로 쉬는 몸 말이다.
그리고 그런 몸을 가진 나는, 말을 조금 더 정확하게 쓰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고마운 순간에는 망설임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누군가의 노고를 위로해야 할 자리에서는 진심으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몸을 돌보는 일은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닿아 있다. 호흡을 고르는 연습은 말을 고르는 연습으로 이어지고, 몸의 중심을 세우는 일은 마음의 중심을 돌아보게 만든다. 오늘 수업을 마치고 나오며, 나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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