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결혼식 축하로 받은 손글씨에 잠시 숨을 골랐다
봄비가 내리던 지난 18일, 나는 뜻밖의 손글씨 축하를 받았다. 모바일 청첩장이 익숙해진 요즘, 더 낯설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필라테스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함께 운동하는 지인이 수줍은 표정으로 분홍색 봉투 두 개를 내밀었다. 벚꽃이 잔잔하게 그려진 봉투 하나와 조금 더 작은 분홍 봉투였다.
"언니... 별건 아닌데요."
나는 순간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런 거 안 주셔도 돼요."
이번 주말이 큰딸 결혼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함이 먼저 들었다. 내가 무심코 꺼냈던 말이 혹시 부담이 된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
"정말 괜찮아요. 마음만 받을게요."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내 손에 봉투를 꼭 쥐여 주었다.
"제 작은 마음이에요. 부담 갖지 말고 받아주세요."
그 말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더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그 마음을 밀어내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결국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고맙습니다. 큰일 잘 치르고 맛있는 점심 함께 먹어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언니, 그렇게 생각하실까 봐, 정말 제 마음만큼만 넣었어요. 큰일 잘 치르시고 커피 한잔 하며 결혼식 이야기 전해 주세요."
우산을 펼쳐 들고 봄비 속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곳으로 이사 온 뒤 함께 운동하며 이어온 5년의 시간이 떠올랐다. 거창한 약속이 없어도, 가끔 나누던 짧은 커피 한 잔의 시간으로 이어진 인연이었다.
분홍 봉투 속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
▲분홍 봉투 함께 운동하는 지인이 건넨 손글씨 축하 메시지입니다 ⓒ 김남정
집에 돌아와 분홍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오만 원권 한 장과 함께 손 글씨로 쓴 축하카드가 들어 있었다.
"따님의 아름다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였다.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축의금은 익숙하지만, 이렇게 손 글씨로 받은 축하카드는 참 오랜만이었다.
요즘은 모바일 청첩장이 익숙하고, 축의금도 계좌이체로 전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도 메시지 한 줄로 축하를 전하는 시대다. 빠르고 편리하다. 그래서일까, 그날의 분홍 봉투는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를 떠올리며 고른 색과 무늬, 그리고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순간의 마음까지 함께 담겨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축하가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방식 자체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종종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마음을 줄인다. 혹은 '괜히 민폐가 될까 봐' 표현을 망설인다. 나 역시 그랬다. 괜찮다며 거절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깨달았다. 진심은 부담이 아니라, 관계를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받는 사람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상대의 진심을 존중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 준비로 분주한 요즘, 그 분홍 봉투는 잠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작은 여유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누군가의 소식을 들으면 쉽게 메시지부터 보내지 못할 것 같다.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할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전하며 살고 있는지 뒤돌아 본다. 어쩌면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빠른 기술이 아니라, 조금은 느리고 번거로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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