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엄마, 나는 관리한 걸까 존중한 걸까

영화 <셀마 포스트의 화려한 외출>, 노년의 존엄과 선택을 말하다

by 김남정

요즘 저녁마다 남편과 오십견 치료 운동을 한다. 뻐근하게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씩 풀리는 게 느껴진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소파에 나란히 앉게 된다. 그날도 그랬다. 리모컨을 들고 있던 남편이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하나 골랐다. <셀마 포스트의 화려한 외출>이었다.



영화 <셀마 포스트의 화려한 외출>의 주인공 셀마는 93세다. 2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살고 있다. 집 안에서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손자 다니엘에게 새로운 기술을 하나씩 배워나간다. 손자는 할머니에게 이메일과 인터넷의 읽고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때로는 차로 외출을 돕는다. 그들의 일상은 조용하지만 따뜻하다.



그 평온한 일상은 한 통의 전화로 균열이 생긴다. 손자 다니엘이 감옥에 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만 달러를 어떤 주소로 보내라는 전화였다. 수화기 속 다니엘의 목소리가 낯설었지만, '손자'라는 말 앞에서 셀마의 판단은 흔들린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감각보다, 지켜야 한다는 감정이 먼저 움직인다. 결국 그녀는 놀란 마음과 느린 동작이지만 있는 돈을 모두 모아 보낸다. 그리고 곧, 그것이 보이스피싱이었음을 알게 된다.


83세 엄마가 받은 전화

image.png ▲<셀마 포스트의 화려한 외출> 넷플릭스 영화입니다. 2024, 개봉한 미국 코미디 영화입니다. 네이버이미지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영화 밖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며칠 전,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83세인 엄마가 말했다.



"동사무소 직원이라며 주민등록증 있냐고 묻더라."


"카드 지갑에 있다고 했더니, 누가 내 주민등록을 가지고 있다면서 법무부로 전화하라고 했어."



다행히 엄마는 그 전화를 끊었다고 하셨다. 주변 친구들에게 다양한 수법의 보이스피싱 이야기를 들은 덕분에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만약 조금 더 당황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셀마의 딸과 가족들도 같은 걱정을 한다. 돈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고령인 셀마의 '인지력'에 대한 의심이다. 혹시 길을 잃지는 않을까, 또 속지는 않을까. 결국 그녀의 손목에는 위치 추적 장치가 채워진다. 이런 딸의 모습을 엿본 셀마는 스스로 자책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불편함을 느꼈다. 이해할 수 있지만, 동시에 납득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노년을 점점 더 작은 세계 안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호라는 이름 아래, 선택과 판단의 권리를 조금씩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도 그 상황이라면 셀마의 딸과 같은 행동과 걱정을 했을 것이다.


셀마는 딸이 자신을 걱정하고 보호하는 시선을 스스로 깨뜨린다. 신문에 실린 미션 임파서블 톰 크루즈 사진을 보며, 그녀는 결심한다. 잃어버린 돈을 되찾겠다고. 느린 몸으로, 기억을 더듬어 우체국 쓰레기통을 뒤지고, 자신이 메모한 사서함 주소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주소의 주인을 직접 찾아내 돈을 되돌려 받으러 나선다.


이 여정은 우습기도 하고, 조금은 위태롭다. 요양원에 사는 오랜 친구에게 전동 스쿠터를 빌리고, 또 혼자 살고 있는 다른 친구 모나에게는 권총까지 빌리는 설정은 현실과 영화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 든다. 이렇게 시작된 셀마의 화려한 외출은 이상하게도, 그 모든 과정이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난 이 영화가 단순히 노인의 코믹 연기로 보이지 않았다.


이 영화의 특별함은 결국 여기에 있다. 셀마의 행동은 분노나 복수가 아니라 '나를 지키고 싶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단단한 감정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노년을 연민이나 눈물로만 영상을 채우지 않는다. 대신 느리지만 분명한 의지로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는 한 인간의 모습을 끝까지 담아낸다.


혼자 집에서 보내는 긴 시간, 점점 줄어드는 관계, 친구들의 죽음과 병으로 인한 단절, 디지털 환경에서의 소외감까지 노년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일상의 불편과 고립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셀마는 그 안에 갇히지 않고, 여전히 움직이고 선택하며 스스로의 삶을 밀고 나간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의외의 지점에 있다. 바로 고령 배우들이 직접 소화한 액션 장면들이다. 악당을 쫓기 위해 뜻밖의 콤비가 만들어지고, 총을 겨누는 긴장감 속에서 때로는 폭파 장면까지 이어진다. 만약 이 장면들을 더 젊은 배우들이 분장으로 대신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처럼 묘하게 웃음이 나면서도 진심이 전해지는 힘은 덜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시간


셀마는 계속 움직인다. 조금 느릴 뿐,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강하게 다가온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이다. 보이스피싱 범인을 찾아 자신이 송금했던 돈을 되찾는 그 모든 일을 마치고, 손자의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셀마는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건넨다. 특별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느린 목소리와 풍경이 묘하게 오래 남는다. 이 장면을 보며 삶은 결국 이런 평범한 순간들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영화를 엄마와 함께 다시 보고 싶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엄마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 속에서 세상과 가족은 점점 노년을 '보호받아야 할 약한 존재'로 규정하려 한다. 하지만 그 틀 안에 머물지 않으려는 셀마와 엄마가 닮아 보인다. 느린 몸으로도 스스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매일 낮은 산을 지팡이에 의지해 오르시는 그 모습은 서툴고 더디지만, 그래서 더 담담하게 다가온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셀마가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감독 조시 마골린의 실제 할머니 셀마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가 건네는 감정은 연기라기보다, 오래 살아낸 한 사람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부모님을 '존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관리'하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위험하니까', '힘들 테니까'라는 이유로 부모님의 선택지를 줄여준다. 하지만 그 배려가, 노인을(고령의 부모님을) 점점 더 '약한 존재'로 규정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고령화 사회라는 말이 낯설지 않고 다양한 수법의 보이스 피싱이 남의 일이 아닌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오래 살게 되었지만,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막막하다. 이 영화는 그 질문에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보여준다. 느리더라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인간다움이다.



주말 저녁, 꽃놀이를 마치고 돌아온 시간에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가족과 함께 보아도 좋고, 혼자 조용히 보아도 좋다. 아마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은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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