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의 <같이 읽자는 고백>을 읽고
나는 중고 서점을 좋아한다. 김소영의 <같이 읽자는 고백>(2025년, 6월 출간)을 만난 것도 중고 서점에서다. 봄빛의 노란색 표지와 저자 특유의 온화한 모습의 표지가 제목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오래도록 읽고 싶었던 책을 만난 건 그날의 행운인 셈이다.
'십만 권의 책과 한 통의 마음'이라니 표지 글귀만 봐도 가슴이 설렌다. 세상이 급변하고 그런 빠른 삶에 익숙해 살고 있지만 빠름과 편리가 우리를 위로하진 못한다. 종이책의 질감을 느끼며 읽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말랑한 마음이 점점 사라져 간다 해도 내게는 여전히 사람의 온기를 품은 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은 더 특별하다. 책과 편지를 동시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37인이 전하는 책 편지는 좋은 책이 한 사람에게라도 더 닿길 바라는 사람들의 진심이 담겨 있다.
책을 사랑하는 37인이 전하는 책 편지
전 MBC 아나운서, 현 '책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김소영)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북클럽 멤버들에게 매달 책 한 권을 골라 편지와 함께 보내는 연결 서비스를 기획했다. 이 일은 막막했던 팬데믹이 지나고도 사회 각층 명사분들의 책과 편지를 받아 계속 이어졌고, 4년간 쌓인 소중한 책과 편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같이 읽자는 고백>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는 각계각층의 명사분들께 책 추천을 부탁드릴 땐, 베스트셀러가 아니어야 하고, 다른 곳에서 추천하거나 추천사를 쓴 책도 안 된다는 저자만의 깐깐한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의 책장에 꼭꼭 숨겨져 있던 보물 창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에서 저자의 고백이 담긴 편지를 읽고 나니, 그 마음이 가슴 깊이 전해졌다. 누구라도 이 서문만 읽고 나면, 그저 '언젠가는 읽어야지'가 아니라,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 거 같다. 그러니 저자가 편지에 띄운 '같이 읽자는 고백'은 절대 뿌리칠 수 없는 성공적인 고백인 셈이다.
37인의 편지에 소개된 책들 가운데 내가 이미 읽은 책이 등장할 때면, 반가움에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 누군가의 추천 속에서 익숙한 책을 다시 만나는 일은, 그 책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추천하는 진심 어린 고백들이 담긴 편지들을 읽으며, 이 책에 소개된 목록을 하나씩 따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래서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이 끌리는 몇 권을 골라, 꼭 읽어보고 싶은 책들로 남겨두었다.
문학 평론가 박혜진 님의 편지에 소개된 <스웨덴 장화 59쪽> 다. 어떤 책을 추천할까 고민하던 끝에 스웨덴 국민작가 헤닝 만켈의 마지막 소설을 추천했다고 한다.
보통 노년이라고 하면 원숙하고 적절한 해결에 이르고 질서 정연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를 보이기도 한다는 거죠. 이를테면 모순적이고 비타협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을 더 혼란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온 경험을 동원해 자기만의 집을 짓는다고 할 때 그 집은 전성기 때 지은 집보다 덜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 작가의 영혼은 한층 자유롭게 담길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끝내 해결하지 못한 그 난제들을 읽는 게 늘 좋았습니다. - 59쪽
예술가들의 생의 마지막 작품은 덜 매력적일 순 있지만 한층 자유로운 영혼을 담는다는 박혜진 평론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화가들 또한 생의 끝자락에서 기존의 화풍을 벗어나 보다 순수하고 자유로운 표현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완성도나 균형, 혹은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일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 작품은 비로소 조금 거칠고 모순적일지라도 더 진실한 결을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마지막 작품들이 덜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말에 <스웨덴 장화>를 읽고 싶었다. 끝내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과 미완의 흔적들이야말로 한 인간이 평생을 통과하며 끌어안고 온 삶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상영 님의 편지에 소개된 산문집 <두부 95쪽>다. 그는 박완서 작가님을 '첫'이라는 표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며 한국소설의 매력을 가르쳐 준 분이라며 그의 인생 책 <두부, 박완서>를 이렇게 추천했다.
"여러분들에게 '제대로' 추천을 하기 위해 오랜만에 <두부>를 꺼내 읽었습니다. 판권면을 보니 초판이 2002년에 나왔네요. 청양고추를 풀고 바글바글 끓여 놓은 된장찌개처럼 포근하고 구수한 문장에, 칼칼하고 예리한 사유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한국문학의 언저리에서 녹을 받아먹고 있는 30대 중반의 박상영이 손을 맞잡은 것 같은 묘한 기분도 느껴졌습니다." - 95쪽
나는 '된장찌개'라는 비유가 단순한 맛의 묘사를 넘어 한 작가의 세계를 가장 한국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표현이라고 느꼈다. 포근하고 구수한 문장 속에 칼칼하고 예리한 사유가 함께 녹아 있다는 말은, 작가 박완서 글이 지닌 이중적인 힘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이를 편안하게 감싸 안으면서도, 동시에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건드리는 문장들이다.
그가 말한 '손을 맞잡은 것 같은 기분'이 나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좋은 문장은 단지 읽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이들을 조용히 이어준다. 나는 그 연결의 감각이야말로 우리가 한 권의 책을 '인생 책'이라 부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연실 님이 추천한 정성은 작가의 대화 산문집 <궁금한 건 당신>은 가장 마지막에 소개된 책이다. 출판사 이야기 장수의 대표이자 편집자인 이연실 님은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단 한 장의 당첨 복권을 건넬 수 있다면 '이 책'이라며 소개했다.
"저는 정성은 작가와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택시 기사, 이삿짐센터 노동자, 식당 주인, 공인 중개사, 공무원부터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여행지 숙소에서 만난 옆방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배웁니다. 자신의 속내와 상처와 비밀을 드러내는 사람을 초짜 취급하고 쉽게 보는 낡은 시선에서 벗어나 언제까지나 어디서나 인생과 사람 앞에선 초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294쪽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이야기의 아름다움'이란 결국 한 사람의 솔직한 고백과 경청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은이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들이 자신의 속내와 상처를 숨기지 않고 건네기 때문일 것이다. 정성은 작가 역시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내면의 이야기를 예의 경청(대화에서 말하기보다 듣기를 우선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을 말함)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은 함께할 때 더 오래 남는다
나 역시 일상 속에서 비슷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스쳐 지나갈 관계라 여겼던 누군가가 예상치 못하게 자신의 삶을 털어놓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그 사람을 쉽게 판단했던 나의 시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알고 있다'는 착각보다 '아직 모른다'는 태도가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고백을 가볍게 여기거나 서툰 것으로 치부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삶을 버텨온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대할 때마다 익숙함 대신 낯섦의 자리를 남겨두고 싶다. 언제까지나 인생과 사람 앞에서 초심자로 머무르고 싶다는 그의 말이, 이제는 내 마음에도 조용히 남는다.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마이뉴스>와 글쓰기 플랫폼에 기록하는 내 마음 역시 어쩌면 '같이 읽자는 고백'의 한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혼자 읽는 기쁨도 충분하지만, 어떤 일은 함께할 때 더 깊어지고 오래 남는다.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고, 또 다른 독자의 경험과 겹쳐질 때 비로소 그 책은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같이 읽자는 고백을 단순한 독서 에세이가 아니라,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제안으로 추천하고 싶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물론, 한동안 독서에서 멀어졌던 이들에게도 다시 책을 펼치게 만드는 다정한 계기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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