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사계절의 유산, 딸이 물려받은 것들

-나도 이런 엄마길

by 김남정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계절을 엄마로부터 배웠다는 것을.


봄에는 쑥국을 먹으며 알았다. 따뜻한 햇살 속에 움트는 생명의 기운, 그것을 다듬고 데쳐서 식탁에 올릴 줄 아는 사람. 엄마는 봄을 입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여름엔 열무김치와 오이소박이 냄새로 계절을 맞았다. 부엌 바닥에 넓게 펼쳐놓은 소쿠리 속 열무, 그 위로 손끝으로 문지르던 소금. 나는 그 옆에서 얼음 동동 띄운 물김치 한 그릇을 떠올린다. 그 맛이 그리워 여름이면 자연스레 된장국에 열무를 넣게 되는 나. 나는 그렇게 엄마를 따라 하고 있었다.


가을이면 고구마와 말린 나물, 그리고 바싹 마른 대추와 밤으로 가득한 광주리를 떠올린다. 엄마는 가을을 '저장'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겨울.

배춧잎을 한 장 한 장 버무리며 온 집안에 고춧가루 향이 퍼질 때, 나는 엄마의 겨울을 보았다. 춥고 긴 계절을 견디기 위해, 김장을 담갔고, 우리들을 불렀다. 엄마의 손끝은 언제나 무언가를 '건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계절을 따라 부엌에 늘 있던 엄마. 그 모든 장면이 부엌의 시간으로 남아 이제는 나의 하루하루를 따라온다.

이제 나는 나와 남편의 따뜻한 식탁을 차리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아이들은 다 커서 곁에 없지만, 엄마에게 받은 시간들을 내 안에서 되살리고 있다.


집이 조용하다. 딸들이 결혼과 독립으로 떠나고 나니, 우리 집 사계절 풍경도 조금씩 달라질 거 같다.

언제라도 딸들이 돌아오는 날, 익숙한 국물 냄새와, 구수한 밥 한 숟갈로 그들에게도 나의 사계절을 건네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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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를 마지막으로 <브런치 연재> 마무리합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고 용기 내어 쓴 글 지금까지 함께 공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곧 다음 연재 준비해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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