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떡국, 새해의 시작을 여는 한 그릇

떡국에 담긴 소망

by 김남정

새해 아침, 부엌에서는 구수한 사골 육수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다. 이불속에 누워 있다가도 그 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몸이 일어난다. 어릴 적부터 새해 첫날은 '떡국 먹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떡국은, 어김없이 엄마가 새벽같이 일어나 끓이신 그것이었다.


얇게 썬 가래떡이 투명하게 퍼지고, 희고 노란 계란 지단과 김 가루, 송송 썬 파가 흰 사기그릇 위에 어우러진다. 숟가락을 들기 전,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이거 한 그릇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지."


그 말이 마냥 좋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한 살 더 먹는 일'이 가벼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누군가는 한 그릇 떡국을 단순하다 하겠지만, 그 안에 많은 손길과 기다림이 스며 있다.


엄마는 방앗간에서 떡을 뽑아 오면 가래떡을 꾸덕하게 말려두셨다. 한 번 물에 헹궈 뻣뻣함을 덜고, 하룻밤 정도 바람이 잘 드는 곳에 삼베보를 덮어 꾸덕하게 굳힌 떡은 서로 들러붙지 않았다. 그것도 일종의 '배려'였던 것 같다. 떡을 써는 일의 수고를 덜고 먹는 이의 미식을 위한 손맛, 그게 엄마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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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다가오면 가족들은 흩어진 방향에서 다시 집으로 모인다. 엄마는 고기를 두툼히 썰어 넣으셨고, 나는 달걀을 지단으로 부쳐 예쁘게 얹었다. 그리고 동생은, 엄마 옆에 앉아 김 가루를 손끝으로 부슬부슬 뿌리며 속으로 소망을 빌었다.

올 한 해도 무탈하길.

모두 건강하길.

엄마의 떡국을 내년에도 다시 먹을 수 있길


그랬던 우리 사 남매는 각자의 가정에서 식구들을 위한 떡국을 끓인다. 시판 육수에 가래떡을 넣고, 지단을 넣고 김가루도 뿌린다. 겉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맛은 다르다. 그 속에 '마음'이 빠졌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내년을 기약한다. 새해 첫날 엄마의 떡국을 먹으러 가길.

그 맛을 기억하고, 배우고, 남기기 위해서다. 그 한 그릇 속엔 단순한 국밥 이상의 것이 있다. 시간, 정성, 그리고 사랑. 그 모든 것이 푸르른 김 향처럼 피어오르는 새해의 첫 그릇, 떡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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