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김장김치, 엄마의 겨울전쟁

배추에 담긴 온정

by 김남정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엄마는 겨울보다 더 정확히 '김장철'을 알았다. 아침저녁 기온이 쌀쌀해지면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 우리 사 남매도 김장준비를 돕는다. 막내 동생은 엄마의 지휘에 따라 절인 배추를 주문한다. 늘 절인 배추를 탐탁지 않아 하시지만 아파트 생활인지라 그 많은 배추를 절이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맛 좋고 빛깔 고운 고춧가루는 지방에 사는 남동생 담당이다. 우리 부부도 엄마를 모시고 새우젓을 사러 간다.


멸치액젓은 해마다 엄마가 직접 삭히고 끓여서 고운 한지에 내린다. 액젓을 끓일 때 냄새는 코를 막을 정도 지만 그 맛은 기가 막히다. 달콤 짭짤.....


핵심 재료가 준비되면 갓, 파, 무, 생강, 마늘등의 부재료 준비로 김장준비 완료다. 작전 같은 준비였다. 그것은 단순한 '김치 담그기'가 아니었다. 편리한 시대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 가운데, 엄마에게 김장이란 아직도 매서운 겨울을 막아낼 첫 번째 방어선이다.


김장날은 유독 긴 하루다. 이른 아침부터 거실벽과 바닥을 비닐로 깔고 덮고 무채를 썰고 갓을 씻는 등 우리들 손도 바쁘다. 엄마는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빨갛고 매운 양념을 버무렸다.


"장갑 끼면 손맛이 안 나지."


이건 완전 살신성인의 정신이다. 얇은 피부에 닿는 고춧가루 매운맛도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아픈 허리와 무릎엔 투박한 보호대를 하고도 직접 모든 걸 하시는 그 모습, 그날의 김장 풍경 앞에서 난 어린 자식일 수밖에 없다. 김장날은 맛있고도 마음 아픈 날이다.


어느 겨울, 엄마가 없는 김장 날이 있었다. 그해 엄마는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동생들과 내가 무를 썰고 양념을 만들고, 그 손맛을 흉내 내려 애를 썼다. 그러나 고춧가루의 양도, 새우젓의 비율도 자신이 없었고, 결국 그 김치는 싱겁거나 너무 짜거나, 양념 소를 너무 많이 바르거나, 너무 적게 바른 암튼 그해 김장은 제각각이었다.


그날 내가 가장 그리웠던 건 엄마의 손맛이 아니라 그 손끝에서 전해지던 어떤 '확신'이었다. 말없이 배추를 쪼개고 속을 넣던 엄마의 손길이 그 겨울의 가장 따뜻한 온기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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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끝내고 나면, 엄마는 가장 끝자락의 배추 한 포기로 겉절이를 만들어 밥상에 올렸다. 따끈한 밥 한 숟가락에 갓 버무린 겉절이 한 젓가락, 그리고 수육과 새우젓, 굴 보쌈 그건 김장날만 누릴 수 있는, 일종의 보상 같은 밥상이었다.


"힘들어도 이 맛 하나로 버틴다니까."

"모두 맛있게 먹는 모습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그 말에 담긴 고단함을 이젠 안다. 그날 하루에 쏟은 땀이, 겨울 내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 김장김치 속에 들어 있다는 걸.


언젠가는 김장을 내가 할 날이 올 것이다. 엄마만큼은 아니어도, 배추를 고르고 무채를 썰고 양념배합에 온 정성을 쏟아야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나도 맨손으로 양념소를 넣으며

"김장은 고된 일이야."

"사서 먹을까?"

하는 내 안의 속삭임에 잠시 흔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고됨은 이제, 사랑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한 포기 한 포기 속을 넣을 때마다 겨울이 오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 엄마가 그랬듯, 나도 내 가족에게 그 온기를 건네고 싶다.


이제 알겠다.

엄마가 김장을 할 때마다 보여준 그 고요한 집중력, 그건 음식의 맛을 넘어서 삶의 태도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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