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배우는 인내
가을이면 엄마는 운동삼아 가시는 산에서 하나 둘 도토리를 주워 오신다. 바람이 많이 분 어느 날은 지퍼팩 한 봉지, 그렇지 않은 날은 한 주먹만큼을 매일 가져오신다. 다람쥐 겨울 양식인데 다 가져오면 안 된다며 그렇게 조금씩 모은 도토리를 껍질을 까서 볕 좋은 베란다에서 말리신다. 믹서기로 곱게 간 후 앙금을 만들고, 그 앙금을 얇게 펴 그늘에서 5일 정도 말려 손바닥으로 살살 비비면 콩가루처럼 보드라운 도토리가루가 된다.
어느 겨울 엄마는 우리 집에 손수 만든 묵가루를 한 봉지 가져오셨다. 엄마는 커다란 냄비를 준비하라고 하시더니 도토리묵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보통은 도토리가루와 물 비율을 1대 6으로 하지만, 겨울엔 물을 7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엄마만의 노하우를 알려 주셨다. 겨울철엔 건조하기 때문에 물을 조금 더 넣어야 쫄깃한 묵이 된다고 하셨다. 나는 옆에서 열심히 메모했다.
재료 / 도토리가루 1 공기, 물 6 공기(겨울 7), 소금 2 티스푼
방법/ 도토리 가루와 물을 비율에 맞게 넣고 뭉친 알갱이가 없도록 충분히 저어준다.
중불에서 주걱으로 냄비 바닥을 긁듯 한 방향으로 천천히 저어준다. <기포 없는 매끈한 묵이 됨>
보글보글 끓으면 약불로 5분 더 저어준다.
마지막에 들기름 한 스푼 넣고 오래 저어준다.
"묵은 급하면 덩어리가 져. 천천히 한 방향으로 냄비 바닥을 긁듯 저어야 해."
"그래야 바닥에 눌어붙지도 않아."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그냥 '요령'이 아니었다. 한참을 저어야만 걸쭉해지고, 그 걸쭉함은 명품 도토리묵이 되는 신호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손 빠른 엄마도 이때만큼은 더디게 움직였다. 묵을 쑨다는 건, 끓는점을 눈으로 기다리는 일, 그 모든 과정이 다 인내였다.
그렇게 엄마는 천천히 묵을 저었다. 마치 그 부드러운 휘젓는 동작 속에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은 인생의 교훈이라도 담는 것 같았다.
어느 초겨울, 난 엄마께 배운 대로 묵을 쑨 적이 있다. 알려주신 대로 메모를 보고 했지만, 가루는 너무 물에 뭉치고, 불 조절은 서툴렀다. 급히 젓다 보니 덩어리가 생겼고, 걸쭉하지도 않았다. 결국 반쯤 끓는 애매한 상태에서 불을 끄고 그릇에 부은 게 화근이었다. 아래는 물, 위는 흐물흐물. 묵을 젖는 오른팔이 너무 아팠던 기억만 난다.
나의 첫 묵 쑤기 실패담을 들은 엄마는 말없이 다시 묵을 쑤었다. 내가 실수한 걸 탓하지도, 그럴 줄 알았다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다시 처음부터 물을 붓고, 가루를 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묵을 쑤었다. 말없이 보여준 인내, 그게 내가 묵을 통해 배운 첫 번째 수업이었다.
겨울이 깊어지면 나는 가끔 묵을 쑤고 싶어진다. 굳이 사 먹을 수도 있지만, 그 느린 시간이 그리워서, 팔이 아플 만큼 젓고 나면, 내 안의 조급함도 조금 가라앉는다. 식탁 위에 윤기 나는 묵 한 모를 썰어 양념장을 끼얹어 내는 순간, 그날의 진중한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묵 맛보다 더 오래가는 건 그걸 저으며 엄마가 내게 가르쳐준 '기다림의 자세'다. 끓는 것을 지켜보는 고요함, 덩어리를 피하려는 신중함, 걸쭉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단 한 번도 "참아야 한다"는 말을 직접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묵을 쑤던 그 오후마다, 나는 어른이 되는 법을, 말없이 배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