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한 줌의 나물, 그리운 밥상

나물의 가벼움보다 정성

by 김남정

봄, 푸르름이 가득한 밥상


봄이 되면 엄마의 손은 바빠진다. 해마다 엄마는 언 땅을 뚫고 나온 여린 봄나물이 담긴 봉지들을 늘 메고 다니시는 빨간 배낭에서 꺼낸다. 각각의 나물 봉지들을 싱크대에 펼치면, 부엌은 곧 초록빛 들판이 되어 봄향기 가득하다. 냉이를 다듬고, 달래 뿌리를 골라내고, 여린 쑥을 줄기마다 어루만지듯 다듬는다.


"나물은 말이지, 꼼꼼하게 다듬고, 잘 씻는 게 반이야."


엄마는 무심히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다듬고 씻는 과정이 귀찮아 엄마가 만든 완성품만 찾는 미운 오리새끼가 된다. 냉이 뿌리 사이의 흙을 빼내느라 손톱 끝까지 까맣게 물든 손. 그 손은 성가시게도 보였지만, 그 손끝에서 나온 나물은 왜 그렇게 부드럽고 향긋한지. 참기름 한 방울, 엄마가 직접 내리신 젓갈 반 숟갈, 매실액 한 방울, 들깻가루 톡톡, 늘 같은 양념들이지만 엄마의 정성과 맛이 담긴 최고의 나물 반찬이 탄생한다.


엄마의 레시피는 유투버 선생님들처럼 화려한 레시피는 아니다. 가벼운 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입안에 퍼지는 봄 향기와 함께, 그 안에는 엄마의 시간이, 손길이, 마음이 담겨 있었다.


여름, 그늘 같은 가지나물


여름이면 햇살도 반찬이었다.


"이 더위에도 나물이 맛있어야 입맛이 도는 거야"


삶아내고, 찌고, 또 물에 헹구고, 들깻가루와 마늘, 생강즙을 아끼지 않는 엄마의 손놀림. 그저 시원하게 한 끼 먹으라고 했지만, 사실은 식구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손맛이었다.

무심코 집어 먹던 가지나물 반찬에도 엄마는 시간을 쏟았다.


"가지나물은 찌는 게 중요해. 너무 익으면 질퍽하고, 덜 익으면 풋내 나."


그렇게 채반에 익힌 가지를 한 김 식혀 손으로 쭉쭉 찢어 익힌 가지에서 나온 채수 그대로 무쳐 낸 그 맛은 밥보다 나물이 대신한다. 가지나물에 담긴 엄마의 정성과 마음은 언제나 그늘처럼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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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풍요를 다듬는 손


가을은 나물의 절정이다. 도라지, 고구마순, 취나물, 곤드레..... 엄마는 김장을 앞두고 나물 손질에 시간을 쏟는다.


"도라지는 쓴 맛이 문제야. 여러 번 문질러야 해."


투박한 손마디들로 문질러낸 쓴맛은, 엄마의 삶과 닮아 있었다. 단맛보다 오래 남는 쓴맛, 그걸 감내하고 살아온 방식이 엄마의 삶의 태도였다.

한껏 마른 가을 햇살 아래 말려둔 나물 꾸러미는 겨울을 준비하는 작은 보물처럼 보였다. 엄마는 나물 하나하나를 비닐봉지에 나눠 담으며 말했다.


"이건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에 쓸 거야."


제일 먼저 챙기신다. 그리고 나머진 우리 사 남매의 겨울 양식으로 나눠 주신다.


"겨울에 꺼내 먹으면 참 고마운 맛이야."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알겠다. 시간이 들고, 정성이 든 음식은 그 자체로 '고마움'이 된다는 것을.


겨울, 마른 나물과 깊은 맛


겨울은 말린 나물의 계절이었다. 들깨 듬뿍 넣은 시래깃국, 무말랭이 무침, 우거지 된장국, 갓 지은 밥에 먹으면 온몸이 녹듯 풀어졌다.


"나물은 겨울에 더 귀해. 말려둔 게 얼마나 든든한데."


엄마의 시간은 봄부터 겨울까지 바짝 말려 저장해 두었고, 그것은 추운 날들을 견디는 음식이 되었다.


나는 가끔, 말린 시래기를 불릴 줄 몰라 당황하곤 했다. 너무 오래 불려 흐물거리기도 하고, 덜 불려 질기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나물도 기다려야 해. 물속에서 천천히 풀리게 두는 시간이 필요해."


겨울나물은 성질이 느리고 깊었다. 그것을 잘 다루는 엄마의 손맛은, 어쩌면 삶에 대한 태도 그 자체였다. 성급하지 않고, 조급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


한 줌의 나물은 가벼워 보이지만, 거기에는 엄마의 사계절이 담겨 있었다. 손끝으로 다듬는 삶, 그 모든 날의 정성이 담긴 밥상.


나는 오늘도 우리 부부 밥상을 차린다. 가지나물을 무치고 새우젓과 들기름으로 애호박도 볶는다. 엄마가 내게 건네준 사계절의 손맛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젠 우리 집을 방문하는 귀한 손님들에게 이런 밥상을 차려줄 것이다. 엄마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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