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엄마의 여름 김치

얼갈이 속의 시원함

by 김남정

유독 더운 여름날들을 기억해 본다. 내 기억 속 그 여름 그날, 엄마는 부엌에서 김치를 담고 계셨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엄마는 맨손으로 얼갈이배추를 다듬고 계셨다. 쑥쑥 자란 얼갈이는 보드랍고 연한 잎이었고, 엄청난 양이었다. 싱크대 한가득 솟아오른 얼갈이의 푸르고 연한 잎들이 꼭, 엄마의 여름 같았다.


"이 무더위엔 뭐니 뭐니 해도 얼갈이김치가 최고야. 보리밥에 강된장이랑 쓱쓱 비벼 먹어도 맛있고 , 밥 말아 한 그릇 뚝딱이지. 밥도둑이야."


엄마는 언제나처럼 음식 앞에서 겸손하시고 재료들에 고마움을 늘 생각하셨다. 나는 엄마 곁에 서서 하염없이 그 손길을 바라보았다. 그 많은 얼갈이가 다듬어져 소금물에 담기고, 얼마 있지 않으니 반으로 쑥 줄어들었다.


"얼갈이는 씻을 때도 아기 다루듯 살살 다루어야 해. 절일 때도 소금물을 미리 푼 물에 절여. 많이 뒤적이면 풋내가 나서 김치 맛이 떨어져."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내 맘을 알기라도 한 듯 내가 궁금한 것을 속 시원히 알려 주신다. 다듬어진 얼갈이가 소금물에 담기고, 양념이 섞이는 순간 부엌에 여름 냄새가 퍼졌다. 매운 마늘과 달큰한 무, 갓 다진 생강과 액젓이 만나 어우러지는 그 냄새는 어릴 적 어느 여름날, 대청마루에 누워 있던 나를 불러내듯 생생했다.


"엄마, 이거 레시피 좀 순서대로 알려줘요."


나는 어김없이 휴대폰을 꺼내 녹음을 시작했다. 엄마는 늘 똑 같이 말씀하신다.


"이건 뭐 계량할 것도 없어. 손맛이지 뭐"

하시며 웃었지만 그래도 얼갈이 고르는 법 그리고 재료부터 순서까지 또박또박 말해주셨다. 손등에 묻은 양념 한 톨까지 알뜰히 닦아내시는 그 알뜰한 동작 하나하나, 이제는 어쩐지 귀하다.


그날 담은 얼갈이김치는 다음 날 점심, 찬물에 밥 말아먹고 난 그릇 속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늘 그렇듯이 엄마의 김치는 아삭아삭, 시원하고 맵싸한 첫 입에 나는 해마다 '여름의 중심에 와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KakaoTalk_20250717_191504577.jpg 소박하지만 맛있는 여름 식탁



엄마의 여름 김치에는 냉장고보다 빠른 시원함이 있고, 에어컨보다 깊은 위로가 담겨 있다.


아무리 날이 더워도 엄마 손맛이 담긴 밥 한 끼면 참을 만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담은 얼갈이김치 맛도 이제는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


"할머니 김치랑 엄마 김치랑 맛이 비슷해?"


하고 남편과 딸들에게 물으면, 한 목소리로 말한다.


"할머니 김치랑 비슷해 맛있어."


이 한마디에 기분이 몽글몽글해진다.


엄마의 김치는 요란하지 않다. 하지만 첫 입을 베어 물면, 시원하고 담백한 그 맛은 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만든다. 한 숟가락에 들여 있는 절제와 기다림, 그리고 가족을 위하는 사랑은, 나에게 요리 그 이상의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살면서 나는 종종 엄마의 손끝을 떠올린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너무 서두르지 말 것, 적당히 기다릴 줄 알 것, 손이 가는 일이 귀찮더라도 마음을 담을 것. 엄마는 말로 가르치치 않았다. 다만, 김치를 담그는 손끝으로, 묵묵히 삶의 방식을 보여 주셨다.


이제 나도 얼갈이김치를 담근다. 아직은 엄마처럼 시원하게 담그지는 못하지만, 그 손끝을 기억하며 한 번 더 절이고, 한 번 더 간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엄마의 삶이, 그 고요한 손끝의 움직임이 얼마나 단단하고 고마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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