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것질은 이렇게 만들어 먹어
바람이 서늘해지기 시작하면, 엄마는 고구마를 사 왔다. 바구니에 가득 담긴 햇고구마는 아직 땅기운이 남아 있었고, 껍질에서는 단내가 났다. 고구마 특유의 날것의 달큼한 냄새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이맘때 고구마가 제일 달아. 슈퍼마켓에서 사는 과자보다 훨씬 좋은 간식이고 군것질거리야."
엄마는 늘 그랬다. 고구마는 쪄 동치미랑 먹으면 든든한 한 끼가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말리고 또 구웠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한 건 고구마 말랭이.
처음에는 단순한 간식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말랭이를 만들기 위해 엄마가 들인 수고는 적지 않았다. 찜솥에 고구마를 쪄서 충분히 익히고, 껍질을 벗긴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말리기 시작한다. 햇볕 좋은 날은 베란다 대나무 소쿠리에 펴놓고, 비가 올 것 같은 날은 방 안의 선풍기 바람으로 대체했다.
"하루 이틀로는 안 돼. 며칠은 꾸준히 말려야 쫀득하게 돼."
말리기 시작한 지 삼일째 되던 날, 나는 제일 예쁜 놈으로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겉은 말랐지만 속은 덜 졸여져 퍽퍽했다.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간식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해. 단맛은 천천히 우러나야 깊어져."
엄마집 베란다에서 말라가던 고구마 조각들은 노랗고 투명한 젤리처럼 보였다. 엄마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비닐봉지에 담고, 지퍼백으로 밀봉했다. 그리고 작은 쇼핑백마다 한 봉지씩 담아 손녀들 간식으로 주라고 내 손에 쥐여주었다.
"ㅇㅇ이에게 할머니가 주는 선물이라고 해."
나는 아이들이 좋아할 얼굴을 떠올리며, 그 정성 가득한 할머니표 간식을 들고 집으로 갔다. 그날 봉지를 받아 든 아이들은 한자리에서 오물오물 고구마말랭이 파티를 했다.
군것질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줄 나는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마트에서 사 먹던 바삭한 과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정성이 들어간 간식은 먹는 이에게 마음을 전달했다.
지금도 가을이 되면 고구마를 산다. 남편 간식으로 에어프라이에 구워주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말랭이 흉내를 내본다. 하지만 엄마처럼 정성껏 쪄내고, 말리고, 며칠씩 뒤집어가며 말리는 건 좀처럼 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정작 중요한 건 시간보다 '마음'이라는 걸 놓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작은 양파망에 고구마 조각을 올려 창가에 두었다. 이틀째 되자 군내가 올라오고, 며칠 뒤엔 곰팡이가 피었다. 엄마가 왜 그렇게 고구마 상태를 살피고, 날씨를 보며 움직였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군것질은 이렇게 만들어 먹어야지, ' 엄마가 말없이 보여준 방식은 그 시절엔 그저 일상의 풍경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내가 딸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건강한 군것질이고, 한 조각의 이야기로 남았다. 말랭이 하나에도 계절과 손길, 기다림이 있었다. 그러니까 고구마 말랭이는 그냥 간식이 아니었다. 엄마의 노란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