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예술이 되는 글쓰기
브런치가 10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기념 팝업 전시를 향해 글을 쓴다. 단순한 참여가 아니다. 나에게 이 10년은, 아니 그중 내가 함께한 짧은 시간은, 한 권의 책 보다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학생들의 글'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논술 선생으로 학생들에게 문장을 첨삭하고 생각을 끌어내는 일을 했다. 그 시절 나는 늘 뒤에 있었고, 내 이름은 언제나 조용히 가려져 있었다. 학생들의 문장이 빛나면 기뻤지만, 나의 문장은 여전히 서랍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남을 세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름을 걸고 문장을 세상에 내놓는 사람. 그 변화가 바로 브런치와 함께 이루어진 나의 전환이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던 날을 기억한다. 망설임과 설렘이 교차했다. 일기장 속 글은 대게 우울하거나 손해 본 듯한 푸념이었다. 그러다 브런치에 쓰기 시작한 글은 달라졌다. 누군가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 문장을 긍정으로 물들였다. 내 글이 누군가의 하루를 가만히 스칠 수 있다는 생각은, 글에 빛을 남기게 했다.
조심스럽게 브런치 작가신청을 한 날을 기억한다. 한 번에 합격할 까?라는 망설임이 있었다. 올 6월 24일 '브런치 작가에 당선되었습니다.'는 뜻밖의 메일을 받았다. 그날 한 번에 합격한 기쁨과 함께 작가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내 삶에 새길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글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내 삶의 중심에 글을 놓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우연히도 내 인생의 한 전환기와 겹쳐 있었다. 남편의 퇴직 4년 차이자 아이들이 차례로 결혼하여 독립했다. 나는 남편과 하는 시간이 더 소중했고 나의 시간도 더 자유로워졌다. 지금도 여전히 아내, 엄마지만, 그 아이들이 사회인이 된 지금, 나는 비로소 '진짜 나의 이름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브런치는 나에게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다. 내 글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도록 이끌어준 손이자, 내가 어떤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 거울이다. <나는 내가 좋다>라는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 이대로 괜찮다. 이제는 나로 살아도 된다.' 그 말이 글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앞으로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삶을 멋진 예술작품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예술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쓰고 싶다. 글은 나에게 작은 날개이자, 쉼표이며, 앞으로 열어가는 문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한순간 숨을 고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누군가의 책장에 놓이고, 시간이 흘러도 누군가의 손끝에서 또 다른 문장을 열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꿈이다.
하루키는 말했다. "계속하는 방법은 계속하는 것뿐이다."
나 또한 그렇게 걸어가려 한다. 필라테스로 몸을 단단히 세우듯,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마음을 단단히 세우려 한다. 이제는 가르치는 글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쓰는 글을, 그리고 내 삶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