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덜트 액트

<칠드런 액트>를 읽고

by Rx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다. 자기보호본능과 높은 자기 기준의 자아상 때문이었다. 삶의 배경이 안전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윤리나 도덕의 가치관이었다. 법과 규범은 물론이고 종교적 계율까지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방어막이었다. ‘이불 밖 세상은 위험해’ 이 우스개 소리가 나에게는 마냥 개그 멘트가 아니었다. 지킬 것도 빼앗길 것도 없으면서 나 자신을 사수했다. 나의 틀은 완고했으므로 그것이 강함인 줄 알았다. 대쪽같다, 고지식하다, 19세기 여성, 유교걸이라 불려도 ‘그게 뭐 어때서’ 나는 자아의 핵을 겹겹이 채워 단속했다. ‘내가 선을 지키는 한 자칫 실패해도 훗날 자존심을 굽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뻣뻣한 신조는 자존심이었다. 날선 자존심과 부드러운 자존감이 서로 같다고 착각을 했던 어리석었던 나의 긴긴 그 시절이여.


자신만의 삶의 양식과 형식을 유지하며 사는 것은 중요하다. 건전한 하루 루틴을 유지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 아니다. 나무의 딱딱한 껍질 속 초록의 생장점은 늘 해를 향해 뻗어나간다. 한 그루의 나무와 인간의 삶은 비슷해보인다. 중장년 그리고 노년의 외적인 삶의 모습은 고목과 비슷한 외형을 갖고 있다. 만고풍상 헤쳐온 세월 속에 흔들림 없어 보이는 굵직한 밑줄기, 그리고 삶의 경험 속에서 펼쳐진 잔가지와 사계의 시간을 농축해 영글어 낸 열매, 그리고 뿌리인 신념 체계로 어른들의 수종과 수형이 모두 다르다.


모든 나무가 아름답다. 과실수든 조경수든 그리고 들풀마저도 광합성을 하면서 이 지구의 물질 에너지를 교환하고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떤 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로, 어떤 나무는 종이로 책으로, 어떤 나무는 뗄감으로, 어떤 나무는 존재감 없이 숲속에서 한 생애를 살다 갈 것이다. 그저 어디에 싹을 틔워 뿌리를 내렸느냐의 상황 조건으로 그 나무는 거기에 있다. 해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장점을 확장 이동시켜가면서 하늘을 향한 나뭇잎은 간절한 손짓으로 바람에 나부낀다. 서리발 내리고 찬기운 돌 때 허망하게 떨어지는 단풍잎의 순교를 누가 욕할 것인가. 불쏘시개가 된 나무의 화염이 내게 덮칠까봐 두려운가. 나무가 나무를 나무라는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겪는 세월이다. 태풍이 불어 절단난 나무 기둥에선 곧 버섯이 자라고 밑둥에선 곁까지가 자라고 새순이 움튼다. 또한 외과 수술로 접붙이를 시도한 나무에게선 표준을 넘어선 하이브리드 세상이 펼쳐진다. 벼락을 맞아 타죽은 나무는 계약의 증표인 도장이 된다. 우리의 나무는 모두 고유의 숭고함을 가지고 있다. 뱅글뱅글 도는 둥근 지구에 어쩌다 박힌 자신의 좌표가 과연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초록 나뭇잎이 부드럽게 때론 산란하게 흔들리고 있다. 곧 우수수 노랑빨강 예쁘게 떨어지겠지.


나무가 말한다. “나는 여기 있단다. 나는 생명이야. 영원한 생명이야. 아낌없는 생을 살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별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