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강한 연대다
미국은 소위 맛의 고장이 아니라지만 이민자의 나라답게 다양한 국적의 음식이 발달했다. 여러 문화권이 한데 섞인 독특한 퓨전 음식을 많이 접할 수 있고, 실제로 여기서 먹은 베트남 쌀국수가 나의 인생 쌀국수라 칭할 만큼 맛있었다. LA 한인타운에는 한국보다 맛집이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저마다 먼 이국 땅에 정착하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들의 고향 음식, 주식도 그만큼 함께 발전했을 터다. 오늘은 미국 이민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멕시코의 음식, 그중에서도 토르티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옥수수가루로 만든 얇고 둥근 토르티야는 수 천년 동안 멕시코의 필수 음식 중 하나였다. 초기 멕시코 이민자들이 토르티야를 처음 미국에 소개했으며, 지난 약 25년 동안 미국 요리의 일부가 되었다. 수십 년 동안 피자, 스시, 에그롤 등 다양한 음식이 인기를 끌었듯 말이다. 그래서인지 '마트 운영을 위해선 토르티야가 필수로 구비되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마냥 거의 모든 마트에서 토르티야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멕시코계 미국인들에게 토르티야는 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하다.
'나는 마사(옥수수가루)를 기억한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출간한 '호세 안토니오 부르시아가'는 토르티야를 접시와 냅킨이자 포크, 숟가락이었다고 회상한다. 어릴 적 그에게 따뜻한 토르티야는 손난로였으며, 식사 시간에는 마스크와 같은 훌륭한 장난감이었다. 속을 채울 돈이 없을 때는 따뜻한 토르티야를 왼쪽 손바닥에 놓고 소금을 뿌린 다음 오른손 손가락 끝으로 토르티야를 빠르게 말아 올려 먹곤 했다. 멕시코 남서부 전역의 다양한 예술가들은 재료가 부족할 때 토르티야를 캔버스로 사용하기도 한다니, 다소 유쾌한 그의 설명에 토르티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매 끼니 먹었던 쌀밥이나 김치가 때로 우리에게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듯, 멕시코인들에게 토르티야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 무언가인 셈이다. 그들과 윗세대의 추억을 한데 묶고, 타국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는 소울 푸드 말이다. 그래서 나는 향수 중의 최고는 음식이라 말한다. 익숙한 맛을 느꼈을 때의 안도감, 그리고 일종의 소속감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음식은 강한 연대가 아닐까. 멕시코계 미국인에게 토르티야는 그런 존재다.
동네의 작은 타코 맛집은 날이 좋을 때면 언제나 테라스에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럴 때면 냉장고를 털어서 직접 타코를 만들어 먹는다. 짭짤하고 따뜻한 토르티야 덕에 고기, 새우, 토마토, 야채 등 무엇을 넣어도 맛있다. 훌륭한 피자 도우가 되기도 한다. 나만의 작은 도우, 토르티야 위에 어떤 것을 올려도 괜찮으니 '오늘은 내가 바로 요리사!' 소리가 절로 나온다. 토르티야에 피자 치즈를 얹고(그라나파다노 같은 치즈도 함께 넣으면 더욱 풍미 있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십 분만 구워서 꿀에 찍어 먹으면 레스토랑에서 파는 고르곤졸라 피자 못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