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변수란 묘미
한국에는 완연한 봄이 왔단다. 미대륙 중북부에 사는 우리에게는 내일 오전 폭설이 찾아올 예정이다. 작년 4월쯤이던가. 혼자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벚꽃이 활짝 핀 거리를 거닐고 있을 때, 남편은 무릎 높이로 쌓인 눈 사진을 보냈더랬다. 그렇다. 우리는 겨울이 아주 긴 곳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은 때로는 혹독하게 추운 겨울 날씨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긴긴 겨울이 더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만 우리에게 따뜻한 햇빛과 푸르른 새싹을 보여주겠니? 이 정도면 너도 힘들겠다, 얘.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진심이다.
얼마 전에는 눈폭풍 경보가 내려 남편이 출근을 못했다. 갑자기 주어진 휴가 아닌 휴가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데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일단 집에만 있어야 하니 끼니라도 제대로 챙겨 먹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 선정에 고심하다 창문 밖 새하얀 풍경을 보며 문득 크림 파스타가 떠올랐다.
이열치열만 있는 게 아니라구. 눈에는 눈 같은 새하얀 크림 파스타지.
바로 요리에 들어간다. 크림 파스타에는 넓적한 페투치니 면이 잘 어울리지만, 펜네 면 밖에 없으므로 그걸 사용하기로 한다. 약 8분간 삶는데 면을 삶을 때 소금을 살짝 넣는 것이 좋다. 다른 쪽 프라이팬에는 채 썬 마늘과 양파를 달달 볶다가,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취향껏 넣어준다. 버섯, 베이컨, 새우 어떤 것도 좋다. 생크림이 있으면 좋지만 없으니까 생략하고 우유를 넣은 뒤, 치킨 스톡과 약간의 소금, 후추를 넣고 팔팔 끓인다. 마지막으로 면을 넣고 (센 불에서) 달걀노른자를 넣고 재빨리 섞어주면 완성이다.
허나 아직 끝이 아니다.
냉동고에 넣고 요긴하게 쓰고 있는 그라다파다노 치즈를 살살 갈아주는 이 장면, 이게 바로 화룡정점이다.
"눈 내리는 모습 같지? 폭설을 기념한 크림 파스타야. 어때?", "좋은데?" 사실 별 생각은 없지만 최대한 잘 대답하기 위한 대답이다. 그래, 당신도 이 날씨에 고생이 많아. 눈 폭풍은 경보에 비해 큰 피해 없이 사라졌다.
이 주에는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잖아. 그치만 덕분에 치즈가 눈처럼 내리는 장면을 떠올렸네. 주차장에 쌓이다 못해 꽁꽁 언 눈을 치운다기에 차를 옮긴 후 돌아왔더니 다시 폭설이 내리는 일이 종종 있는 곳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이런 일상이 있다면 썩 괜찮지 않겠어. 인생은 변수 투성이라 우리가 염원하는 것을 그대로 쥐어주진 않지만, 생각지 못한 재밌는 장면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찔한 눈폭풍이 무사히 지나갔듯 우리의 겨울도 천천히, 춥지만 때로는 따스하게 그리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