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의 끝판왕 LP 레코드. LP라고는 한국에 있을 적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잠깐 들어본 게 전부여서 직접 구매하고 집에서 계속 틀어놓는 삶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더랬다. 마침 이웃이 새로운 취미로 LP 레코드를 구매했다기에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가보았다. 미국에서 중고 LP 값이 얼마나 저렴한지 아냐며 한껏 들뜬 귀여운 동생이 펼쳐놓은 LP판 사이로 재밌는 것이 보였다. LP판 안에 동화책이 들어있던 것! 여기에 왜 동화책이 있는 거지?
LP를 켜보고 나니 이유가 설명된다. LP판이 음악을 들려줄 뿐 아니라 책도 함께 읽어줬다. 일명 오디오북의 기능을 해내던 것이다. 신명나는 정글북 ost가 끝나가는 순간 자연스레 익살맞은 목소리의 아저씨가 등장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자세히 보니 겉표지에 'Music, Story, book을 함께 즐겨라!'라고 적혀있다. 오늘날 각종 동화책 혹은 워크북에 셀프 팬을 찍으면 글을 읽어주는 것과 방법만 다를 뿐 기능은 같다. 아이들 혹은 어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담꾼 역할.
80-90년대쯤이었을까? 트리 앞에 놓인 LP 플레이어에 설레는 마음으로 LP판을 올려놓고, 이불을 둘둘 말아 몸을 뉘인 채 이야기를 듣던 때 말이다. 노래나 이야기가 끝나가면 LP판을 뒤집거나 다시 재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 수고를 기꺼이 감내할 만하다. 오히려 그렇기에 그 순간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 끝이 있을 때 더 소중하게 느끼는 법이니까.
오늘날 볼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 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핸드폰을 하며 그 와중에 딴생각을 하곤 한다. 약간의 불편은 낭만과 더불어 온전한 추억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이유 없는 수요는 없다. LP판의 인기가 갈수록 치솟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바로 이 순간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는지. 노래와 이야기에 조심스레 귀 기울이게 하는 LP판이 마치 좋은 선생님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