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유치원생 아이가 둘이지만 항상 늦게 퇴근하는 워킹맘 친구가 있다.
업무가 일찍 끝나는 날도(워낙 바쁘긴 하지만) 근처 도서관에 들러 공부를 하거나, 친구들을 불러내 저녁을 먹고 아홉 시 즈음 집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그렇게 늦게 들어가도 괜찮아? 나라면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
"도우미 이모님이 계셔서 괜찮아. 너는 집에만 있으면 안 답답해? 나는 육아만 하면서는 못 살 것 같아."
좋아하는 친구였지만, 그런 모습은 영 마뜩지 않았다.
어릴 적 동생을 돌보며 엄마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학교에서 돌아와 차가운 금속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 집의 서늘한 기운이 싫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 때는 동생과 둘이 라면을 끓여 먹고 나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도 싫었다. 엄마가 언제 오나 하루 종일 기다렸는지도 모른 채 집에 와서도 나와 동생의 얼굴 한 번 제대로 봐주지 않는 엄마도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바쁜 엄마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그 워킹맘 친구가 의외의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는 어렸을 적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바로 내 책가방을 열어보고 모든 소지품을 뒤져봤어. 가방도 탈탈 뒤져가며 모든 걸 꼬치꼬치 캐묻고 간섭하니까, 엄마의 그런 모습이 싫었던 것 같아. 집에서 살림만 하면서 나에게만 집착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나는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간섭 안 하고 자유롭게 풀어주며 키우고 싶었어."
친구의 사정을 듣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아이들을 방치에 가까울 정도로 내버려 둔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친구는 나름대로 엄마의 노릇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집착하는 엄마 때문에 받았던 상처가 되풀이되는 게 싫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모든 사정을 이해해 주고 대신 아이들을 잘 케어하고 있다.)
나 역시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마중 나가 손을 흔들어 주는 것도, 방금 만든 따뜻한 간식을 같이 나눠먹으며 숙제를 봐주고, 아빠를 기다리며 해 질 녘까지 배드민턴을 치는 것 모두 아이를 위한 것이지만 어릴 적 해보지 못한 나를 위함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다른 사정을 품고 자라나 아이를 키운다.
키우는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유일하게 같은 한 가지는, 우리 모두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것.
내가 받은 상처를 아이만은 받지 않길 바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