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작은 생체적 고찰
나는 대학에서 뇌과학을 전공했다. 이름만 들으면 굉장히 생소한 전공인만큼 나 역시도 뭐가 뭔지 모르고, 다만 혼란스러운 내 뇌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전공으로 선택했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한 일도 아주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든 전공이었지만 내 마음과 내 몸이 왜 이러는 지는 이해하기 아주 좋은 전공이었으니까.
그 중에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사랑’에 관한 생체적 매커니즘이다. 누구나 가슴 떨렸던 기억이 있다. 첫사랑이 기억에 남는 건 아마도 그런 강렬한 감정의 발화를 도와준 인물이어서가 아닐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선명했던 색은 빛을 다하고 크게 떨리지도 크게 흔들리지도 않는 시기가 온다. 흔히들 그래서 사랑의 유통기한은 최대 3년까지라고 하지 않나. 그 다음엔 정으로 사는 거라고. 뇌과학적으로 이는 영 틀린 말도 영 옳은 말도 아니다.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질 때, 가장 중독적이고 가장 쾌락적인 호르몬들이 나온다. 도박이나 마약같이 자극적인 걸 할 때 분비되는 (물론 마약은 분비된다기보단 그냥 호르몬 곶간을 열어젖혀 있는 호르몬 없는 호르몬 죄다 꺼내놔서 종내에는 호르몬 거지가 되게 하는 행동이지만) 도파민이나 놀에피네피린, 에피네피린 등이 나온다. 이 때 우리는 온 세상이 다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느낀다. 놀에피네피린으로 인해 뛰는 심장은 마치 전력질주 하는 것 같고 마음은 놀이동산에 처음 온 어린이마냥 설렌다. 이 호르몬들은 시냅스라 불리는 뇌세포 손 끝에 자리해서 뇌세포끼리 닿은 손 끝에서 손 끝으로 온 몸으로 금방 그리고 쉽게 뻗어나간다. 하지만, 그런 흥분 상태는 장기적으로 몸에 좋지 않다. 자꾸만 뛰는 심장에 심장에 좋지 않고, 자꾸만 나오는 설레임은 뇌가 정상적으로 행동을 컨트롤하기에 좋지 않다. 그래서 이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그럼 이 기간이 끝나면 우리가 아는 지지멸렬한 관계가 시작되는 것일까? 정말 우리는 더이상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걸까?
내 기준에서 정답은 ‘노’다. 도파민의 축제가 끝나면 옥시토신의ㅜ비가 내린다. 사랑를 더 굳게, 그리고 쉽사리 끊어질 수 없는 ‘정’을 형성하는 옥시토신은 도파민과 다르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뇌세포의 심장인 뉴클리아이에서 나오는 옥시토신은 강력한 접착제이다. 우리가 이 사람은 아닌 것 같은 데 끊어내질 못하게 만드는 호르몬이자(다들 그래서 나쁜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나) 그래도 이 사람밖에 없지 라며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전우애를 느끼게 만드는 호르몬이다. 더이상 두근거리지 않지만 더 강력하게 우리는 사랑을 이어나간다. 어떠한 힘든 상황에도 서로를 붙여놓고 전쟁같은 삶을 같이 헤쳐나갈 손을 붙잡게 해주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이 계속해서 나오는 한,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도파민에서 옥시토신으로 사랑이 업그레드되어 예전만큼 두근거리진 않아도 정이라는 끈끈한 유대와 신뢰가 생기니까, 사랑은 더이상 쏟아지는 소나기가 아니라 따스한 햇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