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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준 Feb 02. 2022

9월 21일~24일

2차 수정완료

 9월 21일(화)


추석이다. 아침으로는 전날 부사관단에서 준비해준 김치전과 동그랑 땡, 애호박전 등이 나왔다. 어제 저녁부터 전 부치는 냄새에 침이 줄줄 흘리도록 먹고 싶었다. 쌓여있는 전들을 보며 전의를 다졌다.

이럴 때 밥을 먹는 것은 하수이다. 일단 전만 최대한 눈치 보이지 않는 선에서 받고 전만 먹는다. 그리고 다시 전만 리필해서 먹는다. 자리도 배식하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서 식사하는 곳과 배식하는 곳의 동선을 최대한 짧게 유지하려 노력했다. 정신없이 전을 베어물자 입가에 기름이 가득했다. 얼마만에 기름칠을 하는 건지. 왜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한숨이 나오고 힘이 빠진다고 하는지 이해했다.


추석 아침상을 거하게 먹고, 바로 침대에 누워서 낮잠을 자며 이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했다.

‘아 맞다. 오늘 사령부에서 행사있지.’


다행히 깊이 잠들기 전에 일정이 생각났다. 추석 당일에 유엔 사령부를 가고 싶진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유엔에서 추석에 쉴리는  없었다.

우리에게는 추석이지만, 유엔의 입장에서는 오늘은 유엔 세계 평화의 날이다. 일단 사령부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행사를 진행하고, 또 나도 많은 행사에 참여해보았지만, 오늘 행사의 규모가 가장 컸다.

일단 행사의 이름을 봐라. 유엔 평화 유지군에게 유엔 세계 평화의 날이라는 키워드가 가득한 이 행사는, 듣기만 해도 뭔가 중요할 것 같지 않나?

 

오늘 행사에서는 레바논에서 임무수행하는 21개국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각 국가의 국기를 들 기수단이 입장했다. 한국군도 태극기를 한명이 들고 기를 호위하는 인원들까지 해서 4명의 기수단을 지원했다.


기수단들이 자리에 위치하자 이어서 유엔군 사령관인 FC/HOM이 기수단에 대한 열병을 진행했다.


이어서 유엔기, 레바논 기, 병력 공여국의 국기가 순서대로 계양 되었다.(병력 공여국이란 병력들을 유엔에 공여하는, 즉 파병을 보내는 국가를 의미한다. (영문으로는 TCC, Troop Contributing Country)

순서대로의 뜻은 한번에 올리는 것이 아니고 유엔가 나올때 경례하고 유엔기 올리고, 레바논 국가 나올때 레바논 기 올리고 하는 식으로 애국가의 3배 정도 동안 경례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원래 항상 처음에 국가를 들을 때면, 내가 이 직업을 갖은 것에 대한 감사를 느낀다.


애플의 CEO가 코카콜라의 한 임원을 영입할 때 했던 말이 있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설탕물을 팔 것이냐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데 힘을 쓸 것이냐.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국기에 대한 거수경례로 대답할 수 있다. 원래 설명할 때 말이 많으면 땡이다.


이제 여기까지 생각하면 경례를 해야하는 3곡중 1.3곡 정도가 끝나있다. 아직 1.7곡 남았다. 단순 거수 경례에 인데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났다.

이해를 위해서 비유를 하자면, 항상 2분정도 플랭크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6분 플랭크를 시키는 것이다. 근데 여기서 플랭크 도중에 자세가 흐트러졌다? 이건 상대방의 국가에 대한 모독으로 비춰질 수 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경례를 하면서 플랭크에 대한 비유를 생각해낸 스스로가 기특하고 재미있어서 웃음이 났다. 플랭크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이내 1.7곡도 끝났다.


이어서는 Fallen Heros(임무수행 중 사망한 유엔군)에게 화환을 전달했다. 화환 전달은 인도군이 담당하였다. 인도군 2명이 화환의 좌우측을 잡고 순국 유엔군 기념비로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 예전에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의해서 인도 파키스탄의 국기 계양식 간 인도군이 태권도의 발차기 기술 내려찍기와 같이 다리를 쭉쭉 올려서 이동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몸을 제대로 풀어줘야지 안그러면 허벅지 뒷쪽의 근육이 남아나지 않겠다 생각했다.


진귀한 관경에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댔다. 영어로는 오리걸음에 닮았다고 하여 Duck Walking 이라고 한단다.


이어서 유엔군 사령관의 연설이 있었다.


“평화는 깨지기 쉽다. 절대로 당연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오늘은 순직한 평화유지군들을 기리는 날임에 동시에 분쟁을 중지하는 날이다. 평화란 단순히 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일을 필요로 한다. 앞으로 6개월 간은 레바논 군을 물질적으로도 지원하도록 새로운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매년 평화의 날을 맞이할 때 마다 우리는 주제를 갖는다. 올해는 지속가능한 평화가 그 주제로 선정됐다. 우리는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일해야 하며 지역 사회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여야 한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서 관광업에 주로 종사하는 레바논의 경제는 특히나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22개의 학교와 병원들에게 의료 시선을 지원하며 블루라인 일대를 안정하게 유지하자. 길을 잘 닦자.”


예전에는 연설을 그냥 들었다면, 영어로 진행되는 연설에는 나중에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분들 중에서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여쭤보는 경우가 많아서 놓치지 않고 필기했다.

실제로 이번 연설에서도 6개월간 레바논에 구호 물자를 유엔차원에서 레바논 군에게 직접적으로 지원한다는 결의안의 통과를 발표했고, 유엔군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지 언급했다.


이어서는 사령관, 레바논군 사령관, 각 국가별 대표 한 명이 비둘기를 날렸다. 행사 계획에 Dove Handler 를 국가별 한 명씩 지원달라고 해서 처음에는 혹시 Dove가 비둘기 말고도 다른 의미가 있나해서 통역장교니까 또 자존심은 있어서 몰래 구글에 검색했다. 알고보니 정말 비둘기가 맞았다. 카운트 다운 셋에 맞춰서 비둘기를 하늘로 던졌고,(날렸다는 표현보다는 하늘 위로 던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던져지면서 약간 정신을 잃었던 비둘기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하늘로 솟았다. 동물단체에서 보면 문제를 삼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성경에 보면 비둘기로 번제를 드리는 내용이 있는데, 던져지는 측에 좀 더 비둘기도 만족하지 않을까.


레바논 현지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부터 수 많은 인파들이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군복도 다르지만 모인 21개국의 군인들이 있다. 하나의 뜻을 가지고 하나의 가치를 위해 일하는 경험. 다소 지쳐가는 파병 생활 중 다시 활력을 얻었다.


9월 23일(목)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안되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지겨운 추석 연휴가 드디어 끝났다.

연휴 증후군 때문인지 아침에 몸을 일으켜 출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커피를 내리고 머그잔에 뜨겁게 담은 뒤 마셨다. 카페인이 좀 돌자 정신이 차려졌다.


다이어리를 보니, 긴 연휴 뒤 출근을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오늘 일과는 알차게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우리 부대를 점검하는 서부여단 부서별 평가단이 방문하는 날이었고, 나는 단장님의 승인을 받은 뒤 지휘통제실과 작전과에서 가지고 있는 작전 문서 등을 보여주고 통역해주는 임무를 맡았다. 바로 이어서 서부 부여단장인 아일랜드 대령을 접견하면 오전의 일정은 종료된다.


먼저 서부여단 작전과 평가단은 6개월에 한번 꼴로 와서 예하 부대들을 방문하며 , 여러가지 독립작전이나 연합 작전들의 근거를 문서 상으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는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평가단은 최초 0830에 도착하여 늦어도 0930에 검열을 완료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이어서는 대한민국 합참에 화상회의로 지휘보고가 있었다. 지휘보고는 0930분쯤 시작하여 10시 30분 쯤 마무리된다. 10분 뒤인 10시 40분에 서부 부여단장인 아일랜드 대령을 접견한다.


부여단장 측은 단순히 커피 한잔 하자고 하였지만, 공보과에 연락하여 사진 촬영을 의뢰하였고, 인사과에 전파하여 단장님실 옆에서 차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참모장님 실에 있는 캡슐 커피를 옮겨다가 단장님실 바로 옆의 주임원사 실로 위치시켜 놓았다. 오전에는 다소 빠듯한 일정이었다.


08시 20분경 출근하니, 지금 막 서부여단에서 검열단이 출발하였다는 이야기를 화생방 장교님이 전해주었다. 차로 아무리 빨리 와봐야 40분은 족히 걸리는데 9시에 시작할 것이고, 그렇다면 합참 지휘보고를 준비하는데 분명 제한사항이 있을 것이었다. 연병장에 모여있는 부서별 수검 대상자들에게 상황을 먼저 알려주어서 40분 뒤에 다시 모이기로 하였다.


9시가 되자 서부여단에서 차량 두 대가 도착하였다. 정보과, 작전과, 민군과, 군수과 등등을 점검하기 위한 인원들이었다. 내가 통역 지원을 하기로 한 작전과에는 서부여단 작전과의 가나 소령 한 명과 A국가 출신의 대위 한 명이었다.


특히 A국가 출신 대위의 첫인상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매우 짧게 짜른. 두피가 보일 정도의 1미리의 헤어컷에 머리에도 패인 흉터 등이 남아 있었다. 수염도 머리 길이와 같이 1미리 정도 길렀고, 키는 190cm 정도에 어깨가 정말 넓고 팔이 두꺼웠다. 결코 부드럽지 않은 인상에 태도 또한 문제가 있어보였다. 전투적이다 라는 것이 첫 인상이었다. 전투복 사이즈만 4XL 는 족히 되어 보였고, 허리 부분은 남았으나 어깨와 등 부분은 거의 찢어질 듯이 여유가 없었다. 골리앗과 같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내 눈도 쳐다보지 않고 골리앗 대위(가명)가 대꾸하였다.

첫 인상부터 “아 쉽지 않겠다.” 지휘통제실에 있는 우리들만 알아 들을 수 있도록 한국어로 나직하게 말하였다.


“그러게. 쉽지 않네. “ 지휘통제실에 있는 한국군 장교님이 말했다.

“준비는 다 되어 있겠지? 필요한 문서들을 다 가지고 와죠. “  의자에 털썩 기대어 앉으며 골리앗 대위가 말했다.

“글쎄, 우리는 프린트로 된 것은 없고, 파일로만 가지고 있어.” 상대방의 태도에 살짝 기분이 나빠, 나도 퉁명 스럽게 대답하였다.

“파일로 가지고 있으면 안되고, 프린트를 해야 해. 그래야만 모든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쉽게 볼 수 있지.” 옆에 있는 가나 소령이 거들었다.

“글쎄, 근데 지난번 협조 회의 때 우리가 받은 이메일에는 파일로 가지고 있던지, 프린트를 가지고 있던지 상관 없다고 하던데? 교훈처와 직접 이야기 한 거야.” 내가 대답하였다.

“그래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골리앗 대위가 우겼다.

합참 회의가 곧 시작이다.


“애들아 미안한데 꼭 여기서 해야되냐. 최대한 빨리 마무리 하고 작전과에서 진행하자.”

대회의실에서 말이 나왔다.


지휘통제실의 PC에서 보관하고 있는 교전 수칙, 부대 방호 계획 파일 등 빠르게 파일로 보여줄 수 있는 문서들을 보여주고, 체크한 뒤 지휘통제실을 나와서 작전과 사무실로 이동하여 다른 문서 등을 보여주었다.


“따라오세요, 다른 가능한 문서들은 작전과 사무실에서 보여드릴게요. 곧 한국과의 화상회의가 진행되어서 지휘통제실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골리앗대위가 한숨을 푹 쉬면서 따라왔다.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았다. 좋게 좋게 넘어가려 했지만, 도저히 못참겠어서 한 마디 하려고 마음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전과에 도착하자 마자 골리앗 대위가 불만을 토로하였다.

“왜 우리가 검열을 하고 있는데 다른 일정이 있다고 나오라고 하지?”

“그건 너네가 8시 30분에 오기로 하고 9시에 와서 그렇기 때문이야. 제 시간에 왔다면...”

“그래, 우리가 잘못했네. 우리가 늦었어. 그럼 그냥 우리 돌아갈까? 네가 원하는 게 그거야?”

감히 말을 끊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선 검열관들이랑 얼굴 붉혀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좋게 타일러서 보내고, 나중에 항의할 게 있으면 정식으로 여단에 보고해서 이의를 제기하자.”

서로 격양되어 목소리를 높이자 주변에서 말렸다. 합참에 지휘보고 중인데 목소리가 커서 방해가 된다면 어차피 혼날 것은 나였다.


골리앗대위는 아직 확인할 것이 남아있다면서 다시 지휘통제실로 돌아갔고, 나는 작전과로 빠져서 가나 소령의 통역을 맡기로 했다. 골리앗 대위는 영어를 할 줄 아는 병사 한 명이 통역을 맡기로 하였다.


작전과에서 가나 소령이 검사를 끝내자 나는 다시 지휘통제실로 가서 골리앗 대위가 이상한 건으로 시비는 걸지 않는지 확인하러 갔다.


지휘통제실로 가니 수검을 받고 있는 다른 한국군 장교 두 분도 흥분해 있었다. 왜 다른 간부들은 영어를 하지 않고, 병사만 영어를 하냐고 비꼬며 아시아 인들의 교육 체계에는 제 2 외국어 과정 등이 없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좋아. 이건 논란의 여지가 없이 깔끔한 골리앗 대위의 말실수다. 좋은 건수를 잡았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길로 밖으로 나가 오늘 수검단을 데리고 온 책임장교에게 바로 이야기 하였다. 그의 무례한 태도는 우리가 수검을 받고 싶지 않게 하였다고. 만일 문제가 되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고, 아시아 인들의 교육 수준까지 운운한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적 발언임을 명확히 했다.


다행히 책임장교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고 나의 흥분을 가라 앉혀 주었다. 대신하여 사과했다.

해당 인원은 파병을 오자마자 말이 많았고, 현재 A국가는 다른 국가와 전쟁중이어서 골리앗 대위는 A국가의 요청에 의해 조만간 귀국할 수 도 있으며 이로 인하여 매우 예민한 상태이니 조금만 양해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뒤 따라 골리앗 대위와 가나 소령이 나왔다. 다른 처부는 한참 전에 끝났는지 미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또한 각 처부에서 기념품이라도 챙겨주었는지, 다들 포카리 스웨트를 마시고 있었다.


“혹시 우리 선물도 준비했니?” 골리앗 대위가 물었다.

“아니.” 단칼에 대답했다.

“그래, 뭐 못했을 수도 있지.”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같이 사진이라도 찍을래? 아니면 우리를 찍어주던가.” 다시 한번 골리앗 대위가 물어봤다.

종종 임무를 마친  서로 전투복에 붙인 국기를 바꾸거나 사진을 찍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다른 과를 검열하러  말레이시아 대위는 벌써 자신의 군복에 태극기를 붙이고 한국군 장교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니, 너랑 사진을 찍을 생각도, 찍어줄 생각도 없어.” 나의 불쾌한 의사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전달하였다.

“내가 찍어줄게.” 어느새 성격이 좋으신  다른 간부님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골리앗 대위와 가나 소령을 태극기를 바탕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배웅도 하지 않고 보내버렸다. 불쾌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고, 흥분을 하니 주변에서 잘 참았다고 다독여 주셨다.

그래도 혈기 어린 장교가 가서 이의를 제기하고 해야  인원들도 우리한테 함부로 못하는 거야.  했다.”

평가단이랑 싸웠다고 혼날줄 알았는데 보듬어 주시니 감사했다.


잠깐 작전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물 한모금을 마시고 있었다. 아직 10시 20분이고, 20분 뒤에 서부 부여단장이 돌아온다. 바로 그때 위병소에서 무전으로 서부 부여단장이 입영하였다는 무전이 왔다. 아직 합참 회의가 진행중이다.


그 누구하나 마중하러 회의 도중 쉽게 나오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왜 검열단은 30분 늦게 오고, 부여단장은 20분 빨리 오는가? 그리고 왜 합참 보고는 오늘따라 길어지는가? 통역장교인 나는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가?


우선 급한대로 나 혼자 서부 부여단장을 맞이하여야 한다. 아일랜드 대령이지만 뭐 내가 이렇게 저렇게 농담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하였다.


충성! 부여단장님, 통역장교입니다.”

“기억합니다. 잘 지냈죠?” 여전히 톰 크루즈 같은 웃음을 짓으며 안부를 물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부여단장님께서 40분에 도착하시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어서, 현재는 한국의 합참과 화상 지휘보고를 진행중입니다.”

“내가 일찍 온 것이니 이해합니다.”

이어서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다, 레바논의 기름 부족사태로 인하여 주유소마다 차량들이 길게 서 있고, 이는 곧 심각한 교통 체증으로 이어진다 같은 전혀 영향가 없고, 누가봐도 시간을 벌기위한 대화를 한 5분간 이어나갔다.


바로 그때 뒤에서 경례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지휘보고가 끝나고 다들 나온 것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예정대로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차담을 하실 곳으로 안내해드렸다.

전날 만난 이탈리아 경호팀장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약 한 시간의 차담이 끝나고 부여단장님은 돌아갔고, 이로써 오전의 일과는 모두 마무리 되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출근한 뒤에는 다른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했다. 오전에 있었던 골리앗 대위와의 언쟁을 부풀려서 나의 영웅담으로 만들었다. 업무상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잠깐 시간날때 커피 한잔하며 수다를 떠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추후의 A국가 출신의 다른 장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나의 아끼는 친구 골리앗 대위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다른 장교는 이미 나와 골리앗의 문제에 알고 있었고, 이는 서부여단에서 이미 유명한 일화라고 전해 주었다. 골리앗은 귀국했고, A국 출신의 다른 장교는 굉장히 친절하며 한국의 제 2외국어 교육시스템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자칫 A국가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뻔했다. 반대로 나 하나로 인해 누군가에게 한국의 이미지로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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