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나노 바나나 AI를 사용해보고 나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기술을 만질수록 내 안쪽 어딘가가 서서히 움츠러드는 느낌이 들었다.
생존 본능이 경고를 보내는 것인지 혹은 시대가 바뀌는 장면을 보고 느끼는 어떤 본능적 불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간만이 특별한 능력이라고 믿어온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막연하게 스치는 생각들 끝에 SF 소설에서 흔히 보던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떠올랐다.
문득, 지금 이 순간이 그 세계의 초입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AI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진, 영상, 음성은 결정적 사실을 증명하는 매체에 가까웠다.
누구나 믿을 수 있는 최소한의 현실증거였다.
그러나 그 신뢰가 무너진다면 어떨까?
이제는 진짜 같은 거짓과 거짓 같은 진짜가 뒤엉키며, 사람들은 더 이상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대로 괜찮을까?
아무리 걱정된들 기술의 속도를 멈출 수는 없을 텐데.
그래서 다시 묻는다.
AI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창의력만큼은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창의력이란 무수한 변수 속에서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것들 사이에서 의미를 발견해내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능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ChatGPT가 등장하고 수 많은 생성형 AI들이 확률을 기반으로 다음 단어를 선택해 이야기를 만들고 음악을 작곡하고 영상을 조합해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 확률적 선택조차 창의력의 한 변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인간만의 공간이라 여겼던 예술의 자리는 이제 서서히 공유의 영역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변화가 놀라움을 넘어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인간만의 고유함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AI 앞에서 너무 쉽게 침범당하는 현실을 마주하면 말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창의력도 우연의 산물일지 모른다.
무수한 경험, 기억, 감정, 환경, 관계들이 얽혀 우연히 만들어지는 조합일 뿐, 그 과정 역시 확률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주변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렇다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학습하고 있는 AI가 우연히 만들어낸 결과물들도 창의적인 무언가로 인정해야 하는 걸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AI는 놀라울 정도로 정보를 결합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감탄스러운 속도로 작업을 수행한다.
하지만 인간은 의식적으로 멈춰 서서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려워하는 존재다.
그 두려움 속에서 의미를 찾아보고 자기 안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문명의 방향을 사유한다.
아마 생각이 불안을 만들어내고 불안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아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기술의 속도는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났다.
그러나 그 속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해석자의 자리는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 작은 자리에서 오늘도 글을 적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일, 그것만큼은 아직 AI가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