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죄는 과연 사해질 수 있는 것일까?

by simon

배우 조진웅의 기사 한 편이 머리속을 어지럽혔다.

누군가가 여러 개의 나사를 들이부은 듯 생각이 복잡해졌고 곧이어 절간 같은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법적 책임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사회적 죗값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폭력의 흔적은 피해자에게 평생 남는다.

그 상처를 생각하면 가해자가 그 죗값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갱생의 여지는 어디까지 허락 될 수 있을까?

극악한 범죄, 특히 살인처럼 되돌릴 수 없는 죄에는 영원한 추적과 반성이 당연해 보인다.

비록 미성년일 때 벌어진 일이라 해도 사라지지 않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30년이 지나도 40년이 지나도 그는 그 사건을 저지른 사람이라는 낙인을 벗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의 본질은 무엇일까?

어릴 때 저지른 범죄를 초중고의 시기로 나눠 판단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범죄는 범죄이지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도덕적 책임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종종 갱생 없는 평생 범죄자라는 극단적 결론으로 향한다.


하지만 다시 질문하게 된다.

소년 시절의 범죄 이후 30년 넘게 성실히 살아왔다면 그 사람은 이미 교화된 것인가?

아니면 언제든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인물로 봐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평생 대중 앞에 나서지 말고 조용히 살아야 하는가?

솔직한 내 감정은 후자에 기울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찝찝함이 남는다.

왜냐하면 교화 시설의 본래 목적은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소년을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정되지 않는 경우도 분명 많다.

그러나 과연 모두가 그런가?

정말로 모든 소년범이 평생을 잠재적 범죄자로만 살아야 하는가?


죄는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을 그 기록에 영원히 가두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부정하게 된다.

인간은 죄보다 큰 존재라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 갱생은 의미를 가진다.


세상을 이해하는 건 정말 어렵다.

나는 언제쯤 세상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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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01

해당 글을 작성하고 나서도 한동안 이 생각에 붙들려 있었다. 그러다 오늘 생각이 조금 더 정리된 것 같아 글을 추가로 남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조진웅씨가 업보로서 닳게 받아야 하는 일이다.


법적 죗값은 이미 치뤘다. 그러니 억울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죄의 무게는 판결문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서 있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죄 값은 다른 형태로 계속된다. 공인의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1년이든 10년이든 30년이든, 지금 당장 방송에 나올 수는 없다. 그것은 벌이 아니라 무게다. 그 시절 피해자가 혼자 감당했던 고통을, 이제 진정으로 나눠 받을 시간이다. 대중이 그 무게를 충분히 느꼈다고 판단할 때까지, 그 시간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공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 아닌가 생각한다.


이 죄는 잊혀지지 않겠지만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고 기억은 사회의 몫이다. 그리고 기다림도 사회의 몫이다.


죄의 대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나는 이 배우를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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