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영상을 보다 보면 문득 의심이 든다. 이거 AI가 만든 거 아닌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읽어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같은 의심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맞다. 그 의심 자체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이다.
AI의 발전 속도는 인류가 지나온 어떤 혁명보다 빠르다. 음악은 AI가 만들어고 구분하기 힘든 수준이고, 코딩은 신입 직원이 짜는 수준을 이미 한참 뛰어넘었다. 영상과 글은 말해서 무엇 하나 싶을 정도다.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지 얼마 안 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재앙 수준의 소식이다.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이 세상을 부품으로 만든다고 했다. 강은 수력 발전의 자원이 되고, 땅은 채굴의 대상이 된다. 기술은 모든 것을 효율과 쓸모의 언어로 번역한다. 그 논리대로라면 글쓰기도 결국 콘테츠 생산의 도구가 되고, 인간은 AI보다 느린 부품으로 전락된다. 나는 요즘 그 논리가 내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걸 느낀다. 이걸 왜 직접 써? AI한테 시키면 되잖아. 주변의 말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써내려가고 싶었다.
돈이 되지 않아도, AI보다 허술한 문장이어도 주어와 술어가 어긋나는 문장이 여기저기 산발해 있어도 괜찮았다. 온전히 나의 생각을 내 손으로 남긴다는 이 만족감은 나에게 효율보다 중요했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부품이 되기를 거부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내 글이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면 절루 웃음이 나온다. AI가 쓴 글과 비교하면 초라하지만 그 초라함 안에 내가 있다.
내 상황만 놓고 보면 지금은 유유자적 글을 쓸 때가 아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야 한다. 그런데 나는 걸으면서 주변 꽃도 보고 풍경도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뒤처지고 있다. 시험 기간에 딴짓을 하면 더 재밌어지는 것처럼, 지금이 이상하게 즐겁다.
하이데거는 기술의 시대에 인간이 잃어버린 것은 속도가 아니라 현존, 즉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살아있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뒤처지면서 지금 이 길위에 서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이 뒤처짐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 예상을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비용과 편익을 따지지 않고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계산되지 않은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지켜보는 것, 그 자체가 지금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내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