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꼭 해야 하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것
볼펜을 쓰다 보면 찌꺼기가 생긴다. 써지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지만 때라도 낀 것처럼 신경 쓰여 휴지로 닦아내고 다시 쓰곤 한다.
살다 보면 그런 잔여물들이 쌓인다. 잘 살아보려고 노력해도 흔적은 남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 불안해진다. 유튜브를 보더라도 의미 있는 영상을 찾고, 책을 읽더라도 무언가를 건져내려 한다. 쉬는 시간에도 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꾸 잔여물이 쌓이는 게 아닐까. 볼펜도 쓰지 않고 내려 놓아야 할 때가 있다.
최근 봄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40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상하게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고 잘 쉬었다는 감각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볼펜을 손에 쥐었다.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하자 손은 멈출 줄 모르고 몇 시간이고 움직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볼펜에는 여전히 찌꺼기가 끼어 있었지만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