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하는 추위

혹한기 훈련의 생각하기 싫은 추억

by simon

군대에서는 혹한기 훈련을 1년에 한 번씩 진행한다.

상병 때였을 거다.

12월 말인지 1월 초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때의 혹한기는 군 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힘든 훈련이었다고 기억한다.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추위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겨울에도 두껍게 입지 않아도 크게 춥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등병 때 경험한 혹한기 훈련도 나름 할 만하다고 느꼈다.

혹한기 자체의 훈련 강도는 약하기 때문에, 사실상 버티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만만하게 보던 강원도의 겨울은 군 생활 막바지에 가서야 제대로 경험해버렸다.

모르는 채로 끝났으면 더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인생 마지막 혹한기를 준비할 때, "따뜻하게 지내다 오자"라는 마음으로 핫팩을 30~40개쯤 사갔다.

후임은 그걸 보고는 "무슨 핫팩을 그렇게 많이 사냐"며 엄살 부린다고 놀렸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밖에서도 따뜻하게 있고 싶어서 정말 다 필요해 사간 거였다.

잘 때는 땀날 정도로 자고 싶다고 했다.


훈련 날이 가까워지자, 기다렸다는 듯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기 시작했다.

영하 10도에서 15도까지 떨어진다는 일기예보를 봤다.

훈련 취소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야외 날씨는 위험할 만큼 추웠다.

하지만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혹한기는 그대로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웃음기가 사라질 정도로 추웠다.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추워서 하기 싫을 정도였다.

이 날씨 그대로 4일 밤을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핫팩은 하루에 10개씩 깠다.

그래도 추워서 매일 덜덜 떨며 지냈다.

엄살이라고 비웃던 후임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있었고, 장난기 많던 표정은 그날만큼은 유난히 차갑게 보였다.


잠들기 전엔 특히 더 추워서, 핫팩을 5개씩 터트려 몸에 붙이고 잤다.

야간 경계 근무를 서다 온도계를 본 적이 있는데 영하 24도가 찍혀 있었다.

처음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온도계의 빨갛게 염색된 메틸알코올이 처음 보는 위치까지 내려가 있어서 거꾸로 뒤집힌 건가 싶었다.


그 온도를 보고 욕이 절로 나왔다.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들었는데, 꿈에서는 거대한 벽돌 난로와 화톳불이 보였다.

부들부들 떨며 잠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겨울만 되면 발가락이 간지럽다.

조금만 추워져도 몸에 한기가 돌면서 두꺼운 옷부터 찾는다.

오늘 내 방 온도는 17도로 선선한 편이고 사실은 따뜻한 날씨인데도, 나는 두꺼운 잠바를 입고 몸을 웅그렸다.


겨울은 집중하기 좋고 일하기 좋지만 추운 건 여전히 싫다.

발가락이 벌써부터 간지럽게 느껴진다.


참고로, 나를 놀렸던 그 후임은 1년 뒤 다시 혹한기가 왔을 때 핫팩을 100개나 사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후임이 또 "뭐 그렇게 많이 사냐"고 놀렸다더라.

이야기도 이렇게 대를 물려 돌고 도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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