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나는 시절부터 나는 주로 혼자 지냈다.
유치원에서 오후 1시쯤 집에 돌아오면, 집에는 늘 아무도 없었다.
적막한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 혼자 노래를 부르거나 소리를 지르며 문을 열곤 했다.
그시절에는 TV도 5시는 되어야 방송이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EBS는 조금 더 일찍 나왔던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텔레비전에 화면이 나오기까지는 두세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게임기나 비디오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집이 가난했으니 그런 건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패미컴이 있던 아랫집 친구네로 자주 놀러 갔는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였다.
유치원 시절은 정말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린이 전집을 읽는 것뿐이었다.
지금 봐도 조금 어려울 수 있는 책들을, 그 어린 나이에 어떤 마음으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책조차 보기 싫은 날에는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집이 달동네처럼 높은 곳에 있어 내려다보는 경치는 참 좋았다.
건물이 지어지는 모습, 자동차가 개미처럼 움직이는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장 좋아했던 풍경은 해가 지는 해질녘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세상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잘 견디지 못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1년에 한 번 연락하거나 가끔 밥 한 번 먹는 정도다.
일이 아니라면 굳이 누군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요즘은 혼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지금의 세상이 내겐 잘 맞는다.
아마 돈만 충분했다면 집에서 책, 영화, 게임, 공부만 하며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쿠팡이 잘 돼 있으니 필요한 것들은 다 배달시키고 1년, 2년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 밖으로 나가 사람도 만나고 관계도 만든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만, 아주 조심스레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나는 고독 속에서 더 또렷해진다.
아마 그게 나라는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