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혜는 사회적 억압으로 무너져버린 개인이었을까,
혹은 또 한 명의 돈키호테일까?
억압받는 개인의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하여,
혹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목표를 가진 이들이 받게 되는 시선에 대하여.
채식주의자가 되고 자연과 하나 되려 했던 목표를 만든
삶의 우연성과 부조리함에 대하여.
소설에는 세 명의 화자가 나오고 그들의 시선에서 영혜를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으로 보는 영혜는 비정상적인 아내, 딸, 욕망의 대상, 억압된 자, 사회적 폭력에 의해 무너진 사람이었다.
이 책은 폭력적인 사회는 어떻게 한 개인을 무너뜨리는가.
라는 식으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만 이해되는 건
이 소설의 다른 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영혜의 입장에서, 상징적인 의미로서 생각해 보려고 했다.
계기가 어떻게 되었든 영혜는 채식주의자가 되고 자연과 하나 되려 한다. 추구하는 삶이 있는 한 명의 돈키호테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이 일반적인 사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사회적 범주를 벗어난 삶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영혜는 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한 삶을 살아가고자 저항했다.
사회는.. 그런 영혜를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하고 막아선다.
그녀에겐 폭력적인 모습으로.
사회의 억압으로만 영혜가 무너졌다?
영혜는 그 길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했다.
단순히 개인의 의지가 사회의 의지와 달랐을 뿐이다.
구성원의 '돈키호테화'를 막아서는 사회,
사회적 범주에서 벗어나더라도 목표를 좇아 돈키호테가 되려는 개인.
개인과 사회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상충되는 개인과 사회, 그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채식주의자는 그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 내용과는 별개로 삶의 우연성에 대해 얘기를 해보고 싶다.
왜 이런 모든 일들이 하필이면 영혜에게 일어난 걸까?
이 우연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순 없었을까?
일어났더라도 꼭 이런 식으로 해결됐어야만 했을까?
이유가 있었을까?
딱히 없는 거 같다.
지금의 나도 똑같지 않을까.
지금의 나를 만든 이 모든 우연들도 아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보통의 범주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고.
개인적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정당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성장하며 시간이 지나며 삶이란 건 내 의지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점점 느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