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조금 이상해”
“몸이 고장난 느낌이야“
“이젠 부러졌어”
위장장애는 신호를 줬다.
“이대로면 못 먹는다”고
어릴때 부터 말라서여서일까,
몇달 간 돌아와달라며 몸에게 빌며
보험도 들고,
내시경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기도 하던 순간,
그 순간에도,
선택도 나만 가능하다.
그건 여전하다.
주변 누구도 “아니, 지금 쉬어야 해”라고
말해주는 이가 없다.
“다 이렇게 살아”라며
내가 가야할 길을 더 밀어낼 뿐.
한 인간이 태어나 쓰는 돈은 얼마일까,
10살때부터 30살까지 300만원을 한달에 쓰면,
아마도 더 쓰겠지만, 평균을 내면
7200만원,
그 돈이 내 값어치였을까,
“잔잔한 돈이 많이 나간다”는 부모의 말은
그 돈이 없어 해주지 못해 안타까웠다는 걸까
그 돈을 쓰는 내가 부담스럽다는 걸까,
짐이되기 싫다.
다시 매번 서울로
다시 매번 6평 원룸으로
다시 매번 혼자
노랗게 되는 침대로 돌아갔다.
계속해서, 내 자리가 없어서,
정말 빵하고 터지고 나니,
보험이고, 돈이고, 상관없이
늪으로 늪으로
무서움 그 한가운데 혼자 오롯이 섰다.
오롯이 서있고 나니,
이미 부러진 몸은
붙여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혼자라는 걸 인식을 못했다.
그래서 다시 양산으로 갔다.
아프다 소리쳐봤다.
“왜 너만 아프냐
다 안아픈데 왜 아프냐“
내가 아픈게 거짓같이 느껴졌다.
모두가 내가 아픈 게 거짓으로 느꼈으니,
나도 그게 맞는거 같아서,
지금도 아무도 내가 아프다 해도
그들은 먹지못하는 아픔을 모르니
그저그런 하루겠지
라는 고통의 말에 내가 나를 가둔다.
일년이다. 아픈지 일년이 더 지났다.
다시 통증이 느껴지는 날엔
그날의 고통들이
설명할 수 없는 통증들이
3차 병원에서 겪었던 48시간의
외로움이 다시 덮친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2016년도 부산대학교 부산은행 사거리에서
토를 해대면서도
“이건 꾀병이야“
세상이 꿈처럼 보여도
“이건 아프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기분탓”
이라며 내 몸의 경고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믿지 못해. 내가 여기다.
“왜그럴까“라고 물어보면
가족들은 ”그러게 너만 왜그러지”
갈 곳이 없다.
돌아갈 가족이 없다. 혼자다.
아마 그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게
사무치게 아파서
피를 토할 날이 오겠지.
안다. 토해봤어서. 이미 안다.
언제가 되면, 나는 나를 믿으려나,
그때가 되면, 난 내 몸을 사랑하려나
내 마음을 사랑하려나
하루를 오 롯 이 아름답게
사랑하려나.
“숨쉬는 그냥 이 순간,
걸을 수 있고 씹을 수 있고,
웃는 그 순간 순간도,
매초도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쓰는 글자.
20대 내 사진첩에는 하늘 달 그런게 많았는데
이제는 그저 일의 연장선들 뿐이다.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봄 꽃 달 웃음 농담 그런것들“
(미스터 션샤인 변요한 대사)
“사랑따라서 바람따라서”
그렇게 가고 싶다 삶을
지금 내 사랑은 나로만, 향하게,
그러고 싶다,
미친듯이 사랑해서
누구도 내 사랑을 건드리지 못하게,
단단하지만 흔들리게
흩날리는 그 순간 조차도 사랑하게,
사라지는 그 순간도
이겨내지 못한게 아니라,
이겨낼 수 없었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스스로가,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걸
알게, 알고서, 그러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