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사회복지사가 되었을까
나는 그녀의 친한 지인이었을까. 알고 지내던 언니가, 어쩌면 가깝게 지내던 언니가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가끔씩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이 부채감처럼 가슴을 무겁게 짓누를 때가 있다.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는 “고마워요.”였다. 사회복지사로 취직한 후, 나는 2년 가까이 그녀와 별다른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특별한 연휴에 안부 인사를 건네거나 짧은 근황을 전하는 메시지를 보내며, 우리가 아직 서로에게 완전히 잊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 내거나, 만남이나 모임의 초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시절 나는 비정규직 신분이었고, 2년 뒤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다른 일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다.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면 재취업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간간이 그녀가 짧은 메시지로, 암 수술 후 경과가 좋아져 운동삼아 미니잡을 시작했다거나, 가족 방문차 딸과 함께 한국에 다녀왔다는 소식 등을 전해왔던 터라, 나는 그녀의 근황을 놓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우려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시간은 조용히 흘렀다. 2년 후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나는 비로소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연락을 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녀는 평상시와 같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마치 근래에도 연락을 주고 받았던 사람처럼, 서로의 근황을 자연스럽게 물었다.
“일은 그만 뒀어요. 천천히 정리해 가고 있는 중이에요. 되도록 아름답게 보내고 싶어서.”
그녀의 말이 죽음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지나치게 담담했고, 뭔가 초월한 사람 같았다. 이렇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겪었고, 얼마나 많은 것을 떠나보냈을까.
“두 달 전 갑자기 상황이 악화돼서 다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 후 깨어보니 양 다리에 마비가 왔어요.”
휠체어에 앉아 나와 전화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적응해 가고 있어요. 어떤 것들은 저항할수록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법이니까.”
놀란 나를 달래듯,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던 불길한 느낌이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어쩌면 이런 결말은 예견된 일이었다.
“미안해요. 언니.”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함께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아련하게 스쳐갔다. 가슴 속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고,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저 눈앞의 일들에 매여,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곧 그녀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겠다고 약속하며 주소를 물었다. 그녀는 고맙다고 했지만,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다. 한 달 뒤, 그녀는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