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너머 남촌에는

사색과 철학

by 빛담

이른 아침, 교육을 받기 위해 뮌헨에서 밤베르크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역에 도착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역 근처를 한참 헤맸다. 구글 맵에는 걸어서 이십 분 거리라고 나와 있었지만, 화면 속 파란 출발점은 빨간 도착점과 가까워지지 않고 역 근처에서 제자리 걸음만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독한 길치였다. 그럼에도 호기심이 많아 모르는 버스나 전철에 무턱대고 올라타는 모험을 즐기곤 했다.


중학생 때의 어느날, 하교를 위해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종점이 ‘박촌’이라고 적힌 45번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얼마 전 국어 시간에 배운 김동환 시인의 '산너머 남촌에는'이 떠올랐다. 박촌이라는 이름은 내 머릿속에서 신기루처럼 시 속의 산너머 남촌이 되었고, 그곳에 가면 시인이 노래했던 금잔디 넓은 벌과 버들밭 실개천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나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리기 시작하자, 오히려 확신이 들었다. ‘산너머 남촌으로 가는 길이니 이런 길이 맞겠다’ 싶었다.


박촌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저물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먼지 이는 자갈길과 적막한 벌판,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뿐이었다. 꿈꾸던 풍경의 민낯은 냉혹하리만치 현실적이었다.


깊은 실망감을 안은 채, 나는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그곳을 떠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는 이미 어둠 속 낯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무 곳에서나 내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큰 광장에 이르러 중앙의 시계탑을 올려다보니 시간은 이미 오후 8시가 넘었다. 그제야 방과 후 오랜 시간 헤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중전화를 찾아 집에 전화를 걸고 부모님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어릴 적 나는 길을 잘 찾지 못한다는 이유로 종종 혼이 났다. “정말 그렇게까지 길을 못 찾느냐, 어딘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몇 시간씩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할 때마다, 나는 나만 이 세계에서 동떨어진 곳에 떨어진 것은 아닐까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삶의 여정도 그와 닮아 있었다. 나는 자주 잘못된 길을 택했고, 때로는 그것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 등을 돌리고 떠난 자리에는 깊은 후회와 좌절이 남았다. 그때라도 다른 길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뒤늦게 자문하곤 했다.


어린 시절, 나는 텔레비전에서 ‘인생극장’이라는 드라마를 즐겨 보았다. 특정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어린 나는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시절의 막연한 두려움처럼, 나는 인생에서 최선을 선택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삶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있다. 시골의 작은 마을, 조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이었다. 어느 여름날,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다 거의 숨이 넘어갈 뻔했다. 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 물에서 끌어내 주셨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평소에는 그곳으로 소 여물을 먹이러 가지 않으셨는데, 그날은 발길이 그쪽으로 향했다고. 나를 살리려고 그러신 것 같다고.


만약 그날, 그 시간에 할아버지가 그 곳을 지나지 않으셨다면. 내 인생에는 더 이상의 만약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길을 잘 찾지 못하고, 인생에서도 자주 헤맨다. 그러나 적어도 한번,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삶 속으로 이끌어 주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선택의 결과가 후회로 남고, 그 후회가 통렬하게 아플 때마다, 나는 그날의 강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그 만약에 조용히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