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회 복지사가 되고 싶었을까
왜 사회복지사가 되었을까. 이제껏 살아온 인생의 여정을 통틀어 보아도, 이 일은 나와 전혀 접점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이 선택이 지나치게 언밸런스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나는 독일에서 사회복지사가 되었을까.
아마도 그 질문은, 그럴 만한 이유가 정말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일종의 호기심이자 자기검열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다 보면, 정교하게 얽혀 있던 우연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점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아, 나는 결국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 모든 일의 시작에는 독일 친구 소냐와의 만남이 있었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뒤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던 소냐는, 그날 우연히 나와 같은 슈퍼마켓에 있었다. 네 살 된 큰딸과 갓 유치원에 들어간 세 살 된 작은딸과 함께 유제품 코너에서 우유와 요거트를 카트에 담고 있을 때였다.
“초코는 몸에 안 좋아. 하얀 요거트가 더 건강해.”
나는 아이들이 고른 초코 요거트를 다시 제자리에 올려놓으며 원유 요거트를 사자고 계속 권유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어눌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한국 사람이세요?”
소냐는 평소 퇴근 후 매일 밤 한국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나서야 잠이 든다고 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드라마와 한국 음식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남달랐다.
“한국 말이 들려서요. 너무, 너무 반가워서…”
말끝을 흐리며 수줍게 웃는 그녀는, 우리를 만난 일이 즐거운 경험인 듯 보였다.
“저, 한국 좋아해요.”
소냐는 한국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듣던 말을 들으니 반가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이 그렇듯, 순간의 반가움은 금세 사라지고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며 미련 없이 돌아섰다.
소냐가 아쉬운 쪽은 오히려 나였다. 나는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전화번호라도 알 수 있을까요?”
소냐는 내 예상치 못한 요청에 잠시 놀란 듯, 진의를 살피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조심스레 내 손에 건넸다.
그 이후 내가 먼저 몇 차례 전화를 걸었다. 소냐는 내가 정말로 연락할 줄은 몰랐다는 듯 놀란 기색이었지만, 곧 요즘 보고 있는 한국 드라마와 좋아하는 한국 배우 이야기를 꺼내며,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다.
공통의 화제가 떨어지자, 그녀는 잠시 난처해하는 기색이었다. 낯선 아시아 여성과 생뚱맞게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어색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며 얼마 전 졸업논문을 마쳤고, 현재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대학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는지 묻자, 소냐는 자신처럼 나이가 많고 아이를 둔 여성들도 적지 않으며, 졸업 후 일자리도 비교적 많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 위안은 얻었지만, 도전해 볼 생각은 나지 않았다.
소냐가 어느 관청에 사회상담사로 취직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나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는 이미 그녀가 너무 높은 곳으로 올라가 버린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관계의 고리를 잇고 있던 쪽이 나였기에, 내가 연락을 멈추자 우리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