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을까
큰 아이가 아직 두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마리엔 광장에 있는 상담소에 오전 아홉 시 상담을 예약해 두었다. 그 무렵 남편은 걸핏하면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가버리라고 말했다. 농담처럼 들릴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 말을 웃어넘길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실제로 그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고 빈몸으로 한국으로 쫓겨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법을 찾고 있었다. 개인 변호사를 찾아가면 첫 상담에만 백 유로를 내야 했지만, 상담소에서는 무료로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독일에서 여러 해를 살았음에도, 나는 여전히 생활 독일어를 겨우 구사할 수준이었다. 상담을 위해서는 통역이 필요했다. 그래서 독일에서 오래 요양사로 일해 온 교회 권사님께 통역을 부탁했다.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 그날도 아이를 데리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유모차를 끌고 시내를 오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일부터 어려웠고, 전철역의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으면 유모차를 접어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기라, 역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권사님과는 마리엔 광장 분수대에서 만나 상담소로 함께 가기로 했다. 광장 한가운데 있는 분수대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광장은 인파로 가득했고 분수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권사님, 죄송한데요. 제가 분수대를 못 찾겠어요.”
한참을 헤매다 약속 시간이 지나자, 나는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그걸 못 찾아?”
직접적인 비난은 아니었지만, 목소리에는 온기가 없었다. 그녀가 시간을 내 주었는데 내가 무책임하게 굴고 있다는 말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죄송해요. 제가 여기는 처음이라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유일하게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었다. 그대로 돌아서 버리지는 않을까, 나에게서 등을 돌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안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유모차를 밀며 광장 안 인파 사이를 오갔다. 숨이 가쁘게 차올랐고, 입김이 하얗게 흘러나왔다. 안경 너머의 세상은 뿌옇게 흐려졌고, 땀에 젖은 몸으로 한기가 느껴졌다.
겨우 분수대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 자리에 권사님은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자, 그녀는 집에 의대에 다니는 딸이 갑자기 찾아와 밥을 해 주러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내가 헤매고 있는 동안 상담소에 들러 상담 시간을 오후 한 시로 미뤄 두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딸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려고 찾아왔는데 혼자 두고 다시 나올 수는 없다며, 안타깝지만 한 시 약속에는 동행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 어떻게든 해 보겠다며, 괜히 밝은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비어 버린 오전 시간을 어디서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가득한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아이와 함께 머물 만한 곳은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해서,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내부의 목소리가 나를 붙들고 있었다. 겨우 이성의 끈을 붙잡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걷다 보니,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이라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계신 그곳이라면, 나와 아이를 밀어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성당 안에는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들,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섞여 있었다. 수십 개의 초가 켜진 곳 앞에는 묵묵히 서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곳으로 이끌리듯 걸어갔다.
일 유로를 내고 양초 하나를 사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미 여러 불꽃이 타오르는 초꽂이에 조심스럽게 꽂았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아주 잠깐,『성냥팔이 소녀』처럼 따뜻한 집의 풍경이 떠올랐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따뜻한 음식을 나누고, 소소한 하루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통도, 갈등도 다툼도 없는 장면이었다. 그 환영은 내 초가 꺼지지 않는 동안만 허락된, 작고 조용한 행복처럼 느껴졌다.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쯤 일찍 상담소에 도착했다. 직원은 대기실을 안내하며 무엇을 마실지 물었다. 아이가 목이 마를 것 같아 물을 부탁했다. 점심시간 이후 환기를 위해서였는지 창문이 열려 있어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직원이 물 한잔을 가지고 왔다. 아이에게 물을 주려고 유모차에서 내려 잔을 건네는 순간, 잔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유리잔이 깨졌다.
아이는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직원이 달려와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을 보고는, 치울 것을 가지러 사라졌다. 고개를 숙이고 시무룩해진 아이를 괜찮다며 안아 주자, 아이는 금세 커튼 뒤에 숨었다 나왔다 술래잡기 놀이를 하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
직원이 비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돌아와 조심스럽게 유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번, 아이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죄송해요. 아이가 목이 많이 말랐나 봐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유리잔이 손에서 미끄러졌어요.”
나는 아이가 웃고 있는 모습조차 어딘가 잘못처럼 느껴져, 필요 이상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오늘은 상담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시 예약을 잡으시고, 오늘은 돌아가 주세요. 원래 상담할 때는 아이를 데리고 오시면 안 됩니다. 다음번에는 아이를 동반하지 말아 주세요.”
직원이 깨진 조각들을 정리해 가지고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책망하듯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체념이 밀려왔다. 내가 아이까지 데리고 상담을 받으러 온, 상식도 모르는 무례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희망의 끈, 혹시 여기서 무언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인생 상담을 해 주는 곳이라면서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곳이라면서요.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있었다면, 이 추운 겨울날 아이를 데리고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거예요.'
하고 싶은 말들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건물 유리창에, 유모차를 밀고 있는 내 모습이 비쳤다.
“괜찮아.”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 말이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문득 아이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유모차 커튼을 반쯤 들어 아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이는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조용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맑은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 한쪽이 시렸다. 유모차 커튼을 다시 내려주고,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유모차를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