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베토벤의 장례식 다음 날

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by 황선형

1827. 3. 빈


술집 안은 어두웠다. 오래된 목재 테이블 위엔 양초 몇 개가 깜빡이고, 벽에 걸린 시계는 어느새 자정에 가까워졌다. 슈베르트와 친구들-슈파인, 쇼버, 마이어호퍼, 쿠프마이어, 슈빈트, 휘텐브렌너-는 말없이 술잔을 들었다. 모두가 전날의 무게를 품고 있었다. 그 무게는, 베토벤의 죽음이었다.


쇼버 : 이봐, 프란츠. 오늘은 우리가 이 먼지 같은 삶에… 베토벤 선생을 위해 한 잔 해야지.


슈베르트 :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베토벤 선생의 관을 들었을 때…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어. 우리 안의 어떤 이상이, 함께 묻힌 듯했지.


마이어호퍼 : 신은 인간에게 왜 이렇게 짧은 생만 주었을까. 창작은 영원을 꿈꾸는데, 육신은 늘 그전에 무너지지. 베토벤도… 그리고 너도, 그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거겠지.


슈베르트 : 무게라기보단… 잔향이야. 삶은 언제나 한 곡의 중간 악장 같아. 완성에 닿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쿠프마이어 : 또 시작이군. 음악가들, 철학가들, 시인들. 난 그냥 그림 그리는 인간인데, 오늘은 그저 술이 쓰다.


슈파운 : 베토벤 선생은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남았어. 그게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형태 아닐까? 사라지되, 들리는 것.


슈베르트 : 내 곡 어딘가에… 이 자리에 있는 너희의 웃음소리, 말투, 표정이 숨어 있기를 바란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마이어호퍼 : 프란츠, 너는 앞으로 뭘 쓰고 싶니?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지나갔고… 넌 그 뒤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 거야?


슈베르트 : 나는… 완성을 원하지 않아.


휘텐브렌너 : 프란츠, 네가 내게 맡긴 그 교향곡… B단조(8번). 아직도 내 서랍 안에 그대로 있어. 완성되지 않았지만, 난 그 곡이 언젠가 깨어날 거라 믿고 있어.


쇼버 : 프란츠, 그럼… 그냥 미완으로 남기겠다는 거야?


슈베르트 : 그 곡은… 마치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벽 같아. 끝이 어딘지도, 시작이 어딘지도 모른 채… 내 안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슈파운 : 그건 청자에 대한 신뢰일까, 아니면 작곡가의 불안일까?


슈베르트 : 둘 다겠지. 나는 음악이 시간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어. ‘완결’이라는 개념은 종이 위에만 있고, 들리는 순간엔 그저 한 줌의 공기일 뿐이야.


슈빈트 : 그럼… 프란츠 너의 음악은,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또 하나의 집이 되겠네.


슈베르트 : 나는 다만… 어떤 곡은 친구의 말처럼, 어떤 곡은 사랑받지 못한 시인의 마지막 시처럼, 그리고 어떤 곡은 죽기 전에 남긴 나만의 편지처럼, 그렇게 들리기를 바래.


쿠프마이어 : 그럼 오늘 밤 대화도, 언젠가 네 곡 어딘가에 남는 거겠지?


슈베르트 : 이미 악보에 적었다고 믿고 싶어.


그들은 잔을 들었다. 거인의 퇴장을 기리며, 아직 쓰이지 않은 각자의 마지막 악장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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